본지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아리랑' 속의 김제출신 중국동포를 찾아 흑룡강성 하얼빈에 다녀왔다.

 소설 '아리랑'은 김제를 주 무대로 1904년 러일전쟁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우리민족이 일제치하에서 겪었던 나라 잃은 설움과 치욕, 민족의 고난과 애환 그리고 일제에 의연히 맞서 독립을 이루어낸 자랑스런 항일운동사를 그린 대서사시이다.

 모두 12권 4부작으로 구성돼 있는 '아리랑'은 첫 장을 넘기면 김제 만경평야를 "하늘과 맞닿아 넓디나 넓은 들녘은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 자리에서 헛걸음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며 "그 벌판은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평야로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뤄 내고 있는 곳이다"고 밝히고 있으며, 12권 마지막장에서는 일본이 항복을 하고 하얼빈으로 이주했던 동포들이 고향으로 오고 싶었으나 오지 못하고 남게 된 안타까운 상황을 적고 있다.

  이들 하얼빈 동포 취재기를 지난호에 이어 연재한다. -편집자-

중화진에 전라도 출신 많아

  연수현에서 김수길 전 연수현 부현장(68)으로부터 간략한 설명을 들은 우리 일행은 중화진에 김제 부량면 출신 2세가 살고 있다는 소식에 발길을 재촉해 중화진으로 달려갔다.

  오전 10시 30분에 연수현을 출발한 택시는 좁은 시멘트길과 비포장길을 무섭게 달려 한시간이 지나서야 중화진에 도착했다. 

  우리의 면단위와 비슷한 중화진에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마을은 3곳이 있고 이중 '민광촌'은 특히 전라도 출신들이 80%를 차지해 연수현에서는 이곳을 '전라도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한때는 이 마을에 전라도 출신 동포들이 100여세대가 살았으나, 대부분 인근 도시인 연수현이나 하얼빈시로 나가고 현재는 40여세대가 살고 있었다.

  김수길씨가 미리 마을에 연락을 해 둔 덕에 주민들이 마을 어귀에서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부량면 출신 2세 나승씨 만나
 

▲ 동포 2세인 나승씨(55). 작고하신 부친 나성팔씨의 본적이 부량면 옥정리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동포는 가까운 친지를 오랫만에 만나 것보다 더 반갑고 가슴이 벅차 올랐다. 서로 손을 맞잡고, 포옹을 하고, 동포의 진한 정을 나누며 한 동포의 집으로 안내됐다.

 먼저 우리 일행이 온 취지를 설명하자, 집 주인이 17년전 조정래 작가가 다녀간 걸 기억하면서 당시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며 앨범을 뒤적인다.

  우리일행은 속히 김제출신 동포를 찾고 싶은 마음에 동포들에게 돌아가며 고향부터 물었다. 대부분 익산 용안면 출신이 많았고, 한분이 부친의 고향이 부량면이라고 한다.

  이분은 동포 2세인 나승씨(55)로 작고하신 부친 나성필씨의 본적이 부량면 옥정리다. 나승씨는 이곳에서 출생했고 한국말이 조금 서툴었지만, 고향에서 찾아온 우리 일행을 누구보다도 반가워했다. "부친께선 생전에 다행히 그리던 고향을 다녀오셨고 고향을 다녀오신 후로는 한동안 고향쪽 하늘만 바라보셨다"고 회고한다.

 

"죽어서라도 고향가겠다"
부친 유골 송화강에 부려

  중화진 동포 중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한 아주머니가 있어서 만나봤다. 

▲ 문정화씨(68)는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하면 늘 목이 메인다(사진은 지난달 21일 본지 창간 10주년 기념식에서의 영상소개 장면)

  올해 68세인 문정화씨로 고향이 전라북도인 것 만 알 뿐 어딘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3살때 부모님을 따라 북만주로 이주했다가 해방이 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작고하신 부친 문봉선씨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간절해 청취가 금지된 한국 라디오 방송을 이불속에 들어가 몰래 들었고, 형편이 조금만 나아지면 반드시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다짐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부친은 생전에 '죽어서 천년 만년이 걸리더라도 꼭 고향에 가고 싶으니,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을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봉선씨가 사망후 유족들은 유언대로 화장을 했지만 바다가 너무 멀어 가지 못하고 하얼빈시를 흐르는 송화강에 유해를 뿌렸다.

  문정화씨는 나중에야 송화강이 바다가 아닌 중국내륙으로 흐르는 것을 알았고,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마저 들어드리지 못한 불효가 가슴에 못이되어 박혔다.

연수현 거주 만경출신 최성순씨

▲ 연수현에 거주하고 있는 만경출신 최성순씨 부부.

  연수현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수소문끝에 찾아낸 만경출신 동포를 만나기 위해 김수길씨의 안내로 '조선족 경제문화 교류협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노부부가 사무실에 들어선다. 할머니께서 '내 고향이 전라도 김제 만경이다"고 하신다.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심정이 이럴까?' 우리 일행은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할머니 손부터 덥썩 잡고 자리를 권했다.

  할머니 최성순씨(74)의 고향은 만경읍 화포리 120번지로 7살때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등지고 북만주로 이주했다. 어릴때의 마을 모습과 고향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15년전에 고향에 다녀왔지만 꼭 다시 가보고 싶다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해방이 되고 부친께서 고향으로 가려고 짐을 꾸리고 귀향길에 올랐으나, 여동생이 따로 살아 함께 갈 수 없는 처지여서 '죽든 살든 가족이 같이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귀향을 포기했다고 한다.

역사를 망각하면 오류를 반복한다

  본지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소설 '아리랑'속의 김제출신 중국동포를 찾아서>를 취재하는 동안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조정래 작가는 수년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리랑을 집필하게된 계기에 대해 "민족정기의 회복과 역사의 필연성 때문이고, 다시는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식민지 역사가 모두 뭍혀 버려 우리는 식민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일제가 고의적으로 암장시켜버린 식민지 역사를 바로 알게하기 위해 아리랑을 썼다"고 밝혔었다.

  많은 동포들이 일제의 피해로 인해 아직까지도 고통을 겪고 있다.

  동포들을 만난 우리 일행은 하얼빈시에서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731부대와 안중근 의사가 이토호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 그리고 안중근 기념관 등을 둘러보면서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은 그 역사의 오류를 반복한다'는 격언을 가슴 깊이 되세겼다.
 
※ 본지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취재 이후 동포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이건식 김제시장은 이들중 4명을 다음달 지평선축제에 맞춰 고향으로 초청하기로 했다. 이들을 초청하는 이건식 시장과 취재를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흑룡강신문사 관계자 및 김수길 전 연수현 부현장, 그리고 가이드 김철호씨께 감사드린다.

 

홍성근 기자  hong@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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