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김제시 원평은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이면서 요충지라는 학계의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많은 시민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행정에서도 이를 계승 발굴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분 차별과 조세제도의 문란한 운영으로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었던 농민이 주체가 되어 폐정을 개혁하고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 바쳤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위상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

 그 근원지가 우리지역이라는 자부심을 일깨우기 위해 본지는 5회에 결쳐 전문가들의 기고를 받아 동학농민혁명을 재 조명하고자 한다. 지난호에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최고원 사무국장의 기고에 이어 역사학자 이이화님의 글을 싣는다.

1)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역할

▲ 이이화 (역사학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처음 백산에서 농민군 대회를 열었을 때 김덕명은 총참모로 추대되었는데 이때 김덕명포에서는 2천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또 금구의 지도자 송태섭, 유공만, 김인배 등, 김제의 지도자 조익재, 황경삼 등, 만경의 자도자 진우범이 농민군을 이끌었다 한다.

  이해 9월 2차 항일전선이 형성될 때에 금구에서는 김봉득이 5천여명을 거느리고, 김제에서는 김봉년은 4천여명을 거느리고, 원평에서는 송태섭이 7천여명을 거느리고 합류했다고 한다. 이들은 공주전투에 참여했던 것이다.(이상 오지영의 <동학사> 참고)           

  김제 향토사학자로 열심히 농민전쟁 관계사실을 캔 최순식은 여러 증언을 종합해 전봉준이 한때 원평에서 1km거리의 감곡면 항새마을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한편 전봉준이 봉남면 종정마을의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가 한때 봉남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원평에서 1km 떨어진 용계마을에는 김덕명 장군이 살았다. 전봉준의 어머니는 언양 김씨였으니 김덕명과 일가가 된다. 전봉준의 가족이 한때 김덕명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였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예전에는 본관만 같아도 끈끈한 혈연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전봉준 집안이 김덕명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오늘날 금산면에 속하는 원평은 교통의 요지이며, 원평장터는 조선 말기 상설시장이 들어설 정도로 번화하여 전주 서문장의 축소판과 다름없었다.

  이런 곳이어서 장날에는 많은 '민란꾼'들이 은밀하게 몰려들어 장꾼들 틈에 끼어서 세상이 뒤집어져야 한다고 선동을 일삼기도 하고 민심을 충동질하기도 하였다.   "누구나 평등한 미륵세상이 곧 온다"거니 "의인이 나와 양반 상놈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동학농민전쟁의 과정에서도 이곳에서 여러 사건이 벌어졌다.

 2) 금구 원평에 벌어진 농민군대회

  1893년 3월이었다. 북쪽의 보은과 남쪽의 원평에는 때를 같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덕명을 비롯해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등 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집회를 주도하고 있었다. 또 북접에 속하는 서장옥 황하일의 세력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기에 보은집회보다 곧 터질 듯, 강렬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원평집회에는 불갑사 백양사 선운사 등 남도의 유명한 사찰의 승려들이 참여하였고, 이들 속에는 각지에서 농민봉기를 주도한 직업적 봉기꾼들이 끼어 있었다. 이들은 조용히 눈치를 살피는 보은집회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곧바로 제물포로 달려가자고 외치기도 하였다. 특히 전봉준은 원평집회를 이끌면서 이름을 자인 명숙으로 바꾸었다. 관가의 주목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녹두장군의 명성은 이때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녹두장군의 당당한 기상을 보고 우러러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봉준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화려한 부상이었다.  

 3) 원평에서 임금의 사자를 죽이고

  무장에서 봉기한 전봉준은 황토현에 이어 장성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농민군은 대오를 정비한 뒤 나팔소리를 크게 울리면서 갈재를 넘어 원평으로 내달았다. 이해 4월 25일 농민군은 원평에 이르렀다. 원평은 전봉준이나 김개남이나 김덕명이 무수하게 드나든 곳이 아닌가? 원평의 대장소에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전봉준이 원평에 주둔하고 있을 때 홍계훈이 보낸 이효응과 배은환이 임금이 편지를 들고 대장소로 전봉준을 찾아왔다. 또 이주호는 하인 2명을 데리고 내탕금(內帑金, 임금이 보낸 돈) 1만냥을 들고 찾아왔다. 전봉준은 임금의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으나 내탕금은 빼앗았다. 전봉준은 원평장터에서 군중을 모아놓고 이들을 목 베어 죽이고 시체를 마을 뒤에 버렸다. 또 그들이 지니고 있던 증명서와 문서도 그들 시체 위에 던졌다. 

  전봉준은 좀처럼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어떤 회유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이려 한 것이다. 이제 감영군과 중앙군을 격파하고 임금이 보낸 사자를 죽이고 내탕금마저 빼앗았으니 영락없는 역적의 무리가 되었다. 

 전봉준은 전주를 점령하고 전라감사 김학진과 호남의 각 군현에 집강소 설치를 약속했다. 전봉준의 발길이 닿는 고을에는 집강소가 조직되었고 체계를 잡아나갔는데 원평에 총본부격인 대도소를 설치했다 한다.

 4) 원평에서 벌인 전투

  전봉준은 공주전투를 치른 뒤 남하해 다시 전주에서 농민군을 다시 소집할 때, 공주에서 내려온 농민군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농민군들이 다시 그의 휘하로 모여들었다. 그 결과 3천여명이 모였다. 전봉준은 11월 23일 농민군의 대열을 정비해 원평으로 내려왔다. 다시 농민군의 기세는 크게 올랐다.  

  일본군과 관군이 기세 좋게 전주로 몰려오고 있을 때인 24일, 전봉준은 원평에서 또 여러 곳에 전령을 보내 다시 농민군을 규합하여 원평 뒷산에 집결시켜 진을 벌이고 있었다. 

 뒤따라 온 일본군과 관군 300여명은 25일 아침, 구미란마을 앞인 원평천 냇가 들판에 진을 치고 뒷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농민군 수천 명은 일성 팔렬진(一聲叭列陣, 한 명령계통을 따르는 진법)을 3면에 벌이고 품(品)의 모양을 만들고는 한 쪽을 터놓고 있었다. 품자를 구성한 입구 자 셋은 전면에 한 부대, 뒤에 두 부대를 배치하는 따위,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배치한다는 뜻이다. 이 진형은 적이 틈만 보이면 세 대열로 분산해 들판으로 지쳐 내려 갈 수 있는 형세를 이룰 수 있다.     관변 측 기록에는 "포소리가 우뢰와 같고 나는 탄환이 비처럼 쏟아졌다. 적은 산위에 있고 우리 군사는 들판에 있었다. 우리 군사는 사면을 둘러싸고 있었다. 서로 내지르는 함성이 땅을 울렸고 대포의 연기가 안개를 자욱하게 이루어 멀고 가까운 곳을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전봉준은 태인으로 옮겨가 마지막 전투를 벌였고 결국 일본군과 관군이 다시 승리한 셈이다. 원평의 뒷산에는 농민군의 시체를 묻은 초라한 공동묘지가 이 무렵 생겨났다. 뒷날 이곳 격전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널려 있는 탄환을 주어 놀이에 썼다 한다. 더욱이 이곳 사람들은 서로 싸움질을 하다가 감정이 욱해지면 "너에게 죽으려면 갑오년 빈총(유탄)에 맞아 죽었어"라는 말을 곧잘 뱉었다고 한다. 당시 유탄에 죽은 주민들도 많았음을 알려준다.

 김제의 원평은 동학농민전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지역이었고 그 관련 유적도 많이 널려 있다. 우리는 이를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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