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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선녀 수필갇상정보건진료소장

요즘 어떠세요? 

 살림살이도 그렇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힘나는 일이 없다고요?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열심히 살고 있지만 몸은 피곤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었지요. 그런 저에게 가슴 설레는 일이 생겼어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요.

  "세계는 마치 책과 같다.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은 그 가운데 한 페이지만을 읽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의 이 말을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지요. 하지만 여행을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TV나 사진에서 외국의 멋진 풍경들을 보면 정말 가보고 싶다고 중얼거렸지만 팔자 좋은 소리 한다는 핀잔만 들었는걸요.

  우리 여인네들은 나만 생각할 수 없지요. 가족들, 주변 사람들, 직장 일까지 챙기느라 정작 자기 가슴은 사랑할 줄 모르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이기에 결혼 20주년 기념일을 맞으면서 일단 저지르기로 했어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이것저것 걸리는 일도 많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렸더라고요. 6살 먹은 딸, 병원 입원중인 친정어머니, 남편의 갑작스런 브레이크, 다 뛰어 넘었을 수 있었죠. 

  지금부터 제 여행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인터넷을 찾아보면 허다한 여행기가 사진과 더불어 넘쳐나는데 저까지 무슨 말을 더하겠어요? 하지만 제 속에서 자꾸 들썩거리는걸요, 봄처럼. 

  12일동안 서유럽을 돌아본 코스였답니다. 지금까지는 무관심한 나라, 알지 못했던 나라였어요. 그런데 가보니 가슴을 뛰게 하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었어요. 그 감격과 여정을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졸필로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되지만, 제 가슴에 담아와 넘실대는 지중해의 한 움큼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요.  

  제일 좋았던 것이 뭐냐고 물으시면 금방 대답할 수 있어요. 그것은 남편을 독차지 했다는 거예요. 에이, 설마 그러시나요? 일상을 벗어버리고 단 둘이서 자유롭게 돌아다녀보니 훨훨 날아갈 것 같더라고요. 신혼여행을 다시 간 기분이었어요.

  오후1시에 탄 비행기는 영국 런던에 오후4시에 내려주었어요. 지구가 도는 것보다 빨리 날아가서 8시간이 늘어난 셈이지요. 

  자리가 E열이라서 너무 답답하고 힘들데요. 창가의 자리가 부러웠어요. 의외로 여행객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거의 없었고요. 모두 잠든 틈을 타서 화장실 앞에 있는 창문을 열었더니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데요. 다른 승객들에게 폐가 될까봐 온몸으로 가리고 밖을 내다보았지요. 온통 설원이었어요. 산맥의 음영을 빼고는 새하얀 세상엔, 강 자국일까요. 지렁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구불구불 금을 그어져 있어요. 동글 동글한 호수가 에머랄드 보석처럼 여기 저기 박혀있고요.
  승무원에게 어디쯤이냐고 물으니 러시아를 지나고 있을 시간이라고 말해 주네요. 불빛이나 직선으로 그어진 길, 사람들이 침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우랄산맥을 넘고 있나 봐요. 저절로 발에 힘이 주어졌지요. 저 곳에도 발을 디뎌 보고 싶다는 생각!

  자, 이제 런던에 도착했어요. 타고난 유머로 유명했던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해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정말 오길 잘 했지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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