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한 '금산교회'의 실제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엮은 '팟정이의 봄'이 (사)모악문예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첫번째 이야기로 금산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으로 알려진 이자익목사와 조덕삼장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자익은 조덕삼의 종이었으나, 조덕삼이 이자익을 후원해 목사가 되는 것을 도왔고, 그 후에 목사로 섬겼다는 이야기를 모태로 재미있게 '팟정이의 봄'을 구성했다. 7차례에 걸쳐 '팟정이의 봄'을 연재한다.

  다음날 자석은 산에 갔다 오는 길에 다시 예배당을 찾았다.
  "목사님, 계신겨. 지 자석인디요"
  예배당 문이 열리고 목사님이 나오셨다.
  "그래 자석이 왔니. 책 돌려주러 왔구나. 잠깐 들어와라"
  "아니구만요. 책만 후딱 주고 가야써라"
  자석은 누구에게 쫒기 듯 예배당을 빠져 나와 집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주인채와 별도로 쪽문이 있어 대문을 이용하지 않아도 나다닐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자석은 대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들어갈까 말까 주저하고 있었다. 대문을 살짝 밀치고 고개만 밀어 넣었다. 우물에서 어머니가 나물을 씻고 계셨다. 

  "엄니, 지 왔구만요"
  딱히 어머니께 볼 일은 없었지만 자석은 어머니를 부르며 어머니 곁으로 갔다.
  "그려 조심이 잘 댕겨. 나무짐 너무 올리지 말고 돌부리 걸리지 않게 조심도 허고. 배고프면 고구마 먹을텨. 부엌 찬장 옆이 보면 바구니 있은게 같다 먹어"
  "아니구만요"
  자석은 대화는 어머니와 하면서 눈길은 자꾸 안채를 기웃거렸다. 작은 방 문을 열고 소연이 나오는 모습을 본 자석은 사냥꾼에 쫒기는 토끼마냥 대문을 빠져나왔다. 집밖으로 나온 자석은 담장 너머로 소연을 훔쳐보았다.

  '가시내 참말로 예쁘당게'
  예배당에서 소연을 만나 뒤로 자석은 산에 갔다 오면서 예배당을 들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목사님 댁에 나무를 한 짐 드린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고, 예배당이 깨끗해야 한다며 마당을 쓸고 가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은 소연이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은 선녀를 본다하여도 이보다 더 예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정신이 아닌 거지. 어디 감히 아씨를...' 자석은 눈을 찔끔 감고 자신의 볼기짝을 때리며 자책을 하였다.

  종탑 밑에 앉아 줄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종소리가 울릴락 말락 스릴을 즐기며 놀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와서 앉는 기척이 났다.

 '땡' 짧은 종소리가 울리고 자석은 줄을 팽팽이 당겨 소리를 멈추었다. 기척에 놀라 줄이 당겨지며 소리가 났던 것이다.

  "우찮디야. 누구요?"
  자석은 자신의 놀이에 끼어든 이방인에 짜증을 섞어 볼멘소리를 날렸다.

  "미안해. 놀라게 하려고 한건 아니었어" 소연이 당황하며 자석에게 사과를 하였다.
  "아니구만요. 여그는 왜 오셨스라"
  "너도 참. 재미있는 애구나. 사람은 평등하다고 하나님이 그러셨잖아. 말 높이지 말라니까. 듣기 거북해"

  "응, 고것이 습관이 돼나서요. 아니 돼나서"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는데 종이 움직이기만 하고 소리는 안 나던데. 나도 해봐도 돼?"

  "그란디 잘못허면 아까만치로 소리가 나버린당게. 줄을 조심스럽게 댕겨야 허는구만"
  "그럼 네가 같이 줄을 잡아줄래? 나도 해보고 싶어"

  자석은 소연이 옆에 있는 것만도 가슴이 쿵쾅거려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줄을 같이 잡자는 소연의 말에 가슴이 땅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어대, 혼자 해봐라"
  "그러다 종소리라도 나면 목사님이 나오실 거야. 그러지 말고 한번만 같이 해 줘"
  소연은 자석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같이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자석은 마지못해 해주는 것처럼 소연이 잡은 밑으로 줄을 잡았다.
  "줄을 얼마나 잡아야 하니? 이만큼... 어 어 종소리가 날 것 같아"

  자석은 소연의 말은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수전증 환자처럼 손이 바들바들 떨려 줄을 잡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나는 이게 가야 허는구만. 너도 집에 싸게 가더라고" 자석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한번만 하고 가면 안 돼. 재미있는데" 소연은 자석이 일어나 가버리자 그 뒤를 잰걸음으로 따라 붙었다.
  "왜 나를 따라온다냐"
  "얘는, 나도 집에 가는 길이야"

  자석은 좋아서 입이 벙그레 해지는 것을 애써 감추며 소연에게 먼저 가라며 딴청을 부렸다.

  "같이 가자. 혼자가면 심심하잖아. 너 저번에 읽었던 그 책 이야기 좀 해죠"
  "너도 읽어보면 되잖어"
  "그러지 말고 이야기 해줘" 소연은 하얀이를 드러내며 자석을 향해 웃었다.

  '오메 저 가시나가 왜 이런다냐. 왜 나를 보고 웃고 지랄이여' 자석은 소연의 미소에 자기도 모르게 홍길동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긍게 그것이 소설이라고 혔는디. 홍길동이라는 사람 이야기여. 근디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라더만. 도둑이었대"
  "그럼 도둑 이야기잖아. 나쁜 사람이야기네"

  "아녀, 나쁜 도둑이 아니고 의적이라고 나쁜사람 혼내주고 착한사람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여. 월매나 씩씩허다고"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데?"

  "아브지를 아브지라고 못 하고 대감님이라고 불러. 엄니가 종이라서 그려. 그리고 무술을 익혀 욕심 많은 양반들을 혼내주고 가난한 사람들헌디 쌀도 주고 옷도 주고 그려. 나도 홍길동처럼 살고 잡구만"

 "왜? 너도 양반 혼내주려고?"
  "아니구만, 너희 집을 말한 것이 아니여"
  "호호호 누가 뭐라니"
  "나도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며 살고 잡당게. 그런디 나 같은 것이 누굴 도와줄 처지는 아닝게 된다고 헐 수도 없구만"
  "왜 미리 포기를 하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자석은 소연이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격려를 해줬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좋았다.

집 가까이 오자 소연은 종종종 뛰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에 만나서 뒷이야기마저 해줘"
  자석은 여우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귀신에 쓰인 것 같기도 한 것이 오늘 소연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믿기지 않았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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