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 목련이 피어있는 집은 들어가 보고 싶다. 목련처럼, 청아하고 고귀한 것이 그 울안에 있을 것만 같다. 그 마당엔 언제고 햇볕만 들고 응달이 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높은 담도, 허물어져가는 집도, 선녀의 날개옷 같은 목련꽃이 신비하게 감싸 안고 있다.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맑고 환한 빛을 낼 수 있는 것일까. 목련은 꽃눈을 만들어놓고 겨울을 난다. 나무들이 모두 성장을 정지하는 엄동설한에도 질기고 튼튼한 회색 털옷으로 꽃봉오리를 감싸 안으로 창조의 일손을 쉬지 않는다.
 
  겨울 산행에서 꺾어진 목련 가지를 보고 주워온 적이 있다. 이미 겨울눈을 만들어 꽃봉오리를 품고 있는 가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가져다가 물 컵에 담고 창가에 두었더니 기어이 꽃을 피웠다. 왜소한 모습이었지만 순백의 천사였다. 한겨울에 지켜보는 기쁨이 어떠하였던가.

  목련은 꽃송이가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향화'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햇빛 때문이다. 햇볕을 많이 받는 남쪽방향의 꽃눈이 빨리 자라고 먼저 벌어지니까 자연스레 북쪽으로 굽어지는 것이다. 마치 추운 겨울을 몰아내려는 몸짓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봄은 거저 오는 법은 아닌듯하다. 북풍한설을 이기고 기다린 사람에게 더 찬란하게 오지 않는가.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두터운 겨울 뒤에 맞는 봄이 더욱 절절하다. 눈물어린 눈에 비친 목련꽃은 가슴이 미어지는 감격을 준다. 그 고운 자태를 보면 희망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학자들은 이 지구상에서 처음 꽃을 피운 식물로 목련을 꼽는다. 목련꽃은 특이하게도 꽃잎과 꽃받침의 구분이 없고 여러 개의 암술과 수술을 가지고 있는데 술대가 없는 생김이 가장 원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사랑이 생각나게 하는 것일까. 순결한 신부의 모습 같다.

  면사포처럼 빛깔이 더욱 흰 우리 목련은 꽃잎이 아홉 장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백목련은 유백색이고 꽃잎이 여섯 장이다. 목련꽃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먼저 꽃잎을 세어본다. 한걸음 앞서서 피는 우리 목련을 알아보면 괜히 반갑다.

  내 뜰에도 우리 목련나무를 심어야지. 목련을 볼 때마다 그 어여쁨을 마음에 두었다. 그리고 묘목을 두 그루 사다 심었다. 그런데 제법 자라 꽃송이를 보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만 베어지고 말았다. 그 뒤로 큰 목련나무를 옮겨심기도 했는데 그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목련이 있던 자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래, 해마다 이때가 되면 보러간다. 앞마당에 세 그루의 목련이 있는 외딴집으로. 우와, 나무에 달린 수백송이의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맑고 깨끗해진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잡념도 끼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발화의 날은 또 얼마나 짧은가? 활짝 피었구나 싶으면 얼마가지 않아 지고 만다. 그 짧은 꽃을 보면 내가 간절히 바랐던 삶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지 가늠해져서 가슴이 저리다. 인생의 발화는 한번지고나면 그뿐, 다시 봄이 올 수 없으니. 그토록 원했던 삶은 사라져버리고 없구나. 탄식만 남은 듯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만개후의 추한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님이 지은 가사가 가슴을 친다.

  하지만 이어지는 노래의 절정을 자신을 갖고 부른다.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 목련꽃 사진: 최진만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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