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한 '금산교회'의 실제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엮은 '팟정이의 봄'이 (사)모악문예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첫번째 이야기로 금산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으로 알려진 이자익목사와 조덕삼장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자익은 조덕삼의 종이었으나, 조덕삼이 이자익을 후원해 목사가 되는 것을 도왔고, 그 후에 목사로 섬겼다는 이야기를 모태로 재미있게 '팟정이의 봄'을 구성했다. 7차례에 걸쳐 '팟정이의 봄'을 연재한다.

모내기철에 새참을 같이 가지고 다니면서 소연과 자석은 부쩍 가까워졌다. 소연과 친구가 되니 자석은 몰래 소연을 훔쳐보지 않아도 되었다.
  예배당에 들어가면 목사님 말씀은 뒷전이고 소연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기들만의 아지트가 된 소나무 밑 언덕에서 만날 약속을 하였다.
  볕이 좋은 날 소연은 책 한권을 들고 소나무에 기대 책을 읽으며 자석의 나무짐이 끝나길 기다렸다.
  "거그 소연 아씨 다요?"
  "깜짝이야! 동이 아재시네요. 놀랬잖아요."
  "죄송하구만요. 딸년이 산딸기 즙을 좋아혀서 삼봉아래서 딸기 따고 오는디 모습이 아씨 같혀서요."

  나무를 마친 자석이 오자 소연은 산딸기를 나눠 먹으며 동이 아재 만난 이야기를 하였다.
  "동이 아재가 우리가 같이 노는 것을 보믄 안 되는디."
  "왜?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머슴이 주인댁 아씨랑 어울린다는 게 말이 되간디. 너는 양반이고 나는 상놈인디."
  "하나님은 사람은 다 똑같다고 했잖아. 양반이고 상놈이고 그건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거야. 신경 쓰지 마. 난 네가 상놈이라고 생각한 적 없으니까. 그리고 넌 양반집 아들보다 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고, 친절해."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녀. 마님이나 대감어른이 아시면 우리 가족은 쫒겨날 것이구만." 자석은 소연이 동이 아재를 만났다는 사실이 맘에 걸려 신경이 쓰였다.

  "자석아, 너 소연 아씨랑 어울리면 안되야." 자석 아버지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저녁밥상 머리에서 자석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하였다
  "아브지 고것이 뭔 말씀이다요." 자석은 가슴이 철렁하여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더라. 너랑 소연 아씨가 같이 어울려 댕긴다고. 어디 썩을 것들이 우리집에 웬수가 졌나. 헛소리들을 짓거리고 다닌당게."
  "사람들 그냥 허는 말인게 개념치 마쇼." 자석은 소연과 그만 어울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 좋자고 우리 가족 거리에 내몰리게 헐 순 없은게. 내일 만나믄 아는척 하지 말자고 혀야겠구만.'

  다음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자석은 방안에서 비구경을 하면서 소연이 빌려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마당이 웅성웅성 하더니 집사영감과 동이 아재, 순돌형이 자석이네 방앞으로 몰려왔다.
  "자석이 너 이놈. 이리 좀 나와야 쓰겄구만."
  자석은 어른들 여럿이 몰려오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며 겁이 덜컥 났다.
  "왜 그란다요."
  "안방 마님이 찾는구만. 어여 가자."
  "이 놈을 멍석에 말아라."
  "워찌 그런대요. 지가 뭣을 잘못혔간디. 마님 말씀을 혀 주셔야죠."
  "네 놈이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냐. 어서 이놈을 말아라." 마님은 진노하여 자석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놈 방을 뒤져봤느냐?" 마님은 집사영감에게 자석의 방에서 가져온 것들을 가져오라 명령하였다.
  "여그 있구만요. 이놈이 읽고 있던 책만 몇 권 있고 별 다른 것은 없었구만요."
  "이거 우리 소연이 책 아니냐." 마님은 마루에 서서 목소리가 찢어져라 소리를 쳤다.
  "감히 머슴 놈이 우리 딸과 어울려 종놈 주제에 주인 딸을 넘보다니 내 저 놈을 가만 안둘 것이야." 자석은 빗속에 새앙쥐가 되어 멍석에 몸이 둘둘 말렸다.
  "마님, 오해시구만요. 지는 아씨에게 딴 맘을 가진 적이 없으라. 지가 죽을 죄를 졌으라 용서해 주셔요." 자석은 목이 터져라 소리쳐 봤지만 자석의 말은 빗소리와 마님의 노기에 파묻혔다.
  "저 놈을 쳐라." 마님의 명령에 순돌은 몽둥이를 들고 멍석을 내려쳤다.
  "아이구. 어므니여, 아브지여, 지 죽어라. 엉 엉 엉" 멍석에 감긴 자석은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에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오줌이 지리는지도 몰랐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소연과 함께 출타했던 조대감이 마당에 들어서며 소리를 쳤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요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거요."
  "이 머슴 놈이 우리 소연이와 좋아지낸다고 온 동네가 떠들썩 합디다. 이게 무슨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마님은 성이 풀리지 않아 온 몸을 바들거리며 남편인 조대감에게 사건의 전말을 말했다.
  "부인은 소문 따위에 우리 집 아이에게 흉한 꼴을 시키시오. 자초지종부터 알아보아야지." 조대감은 빗속에 벌어지고 있는 정경이 눈에 거슬려 부인에게 핀잔을 준 후 멍석에 말려 있던 자석을 데려다 주라고 명령하였다.
  "영감은 이게 그냥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내 오늘 저놈을 죽이고 그 가솔들을 다 내 보낼 것 입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자석의 부모는 무릎을 꿇고서 손을 빌며 통사정을 하였다. "마님, 이놈을 용서해 주시기라. 이것이 세상을 몰라서 그라지 악헌 놈은 아니고만요. 우리가 이놈 델고 떠날 것인게 용서해주기기라. 흑흑흑"
  조대감네 마당 안은 자석과 자석부모의 울음소리로 가득하였다.
  "뭣들하느냐 이 아이를 데리고 가라는데"
  조대감의 호령에 집사영감과 순돌이 자석을 멍석에 만 채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와 들어오다 이 장면을 목격한 소연은 넋이 반은 나가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어머니, 어찌 이러십니까? 제게 한마디 말도 묻지 않고 이러시면 저를 더 욕보이는 것인 줄 모르셨습니까? 너무 하십니다. 어머니 엉엉 엉엉..." 소연은 어머니를 향해 생천 처음으로 소리를 지른 후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멍석에 말아 메어온 자석은 온 몸이 멍과 피범벅이 되어 정신을 잃었다.
  "내 진작에 말혔잔어. 아씨랑 어울리지 말드라고. 이 어리석은 놈아. 지 분수를 알어야지. 불쌍한 놈. 부모 잘못만나 이 험한 꼴을 당하고. 흑흑흑" 자석의 아픈 몸을 닦으며 자석 어멈은 눈물반 콧물반으로 울기만 하였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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