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한 '금산교회'의 실제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엮은 '팟정이의 봄'이 (사)모악문예에 의해 출간됐다.

  이 책은 첫번째 이야기로 금산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으로 알려진 이자익목사와 조덕삼장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자익은 조덕삼의 종이었으나, 조덕삼이 이자익을 후원해 목사가 되는 것을 도왔고, 그 후에 목사로 섬겼다는 이야기를 모태로 재미있게 '팟정이의 봄'을 구성했다. 이번호를 끝으로 7차례의 연재를 마무리 한다.

새로운길 

"자석이 있냐?" 조대감이 자석을 불렀다.
  "야, 어르신" 자석은 보름 밤낮을 꼼짝없이 방안에서 누워 지냈다.
  몽둥이로 맞은 몸에는 똥물이 좋다며 아버지가 온 몸에 발라대는 똥물로 구린내가 진동하는 방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만 새어나올 뿐 집 주변은 정적만 가득했다.
  그런데 조대감이 밖에서 자석을 부르고 있었다.
  자석은 아직도 온전치 못한 몸으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움직일 수 있겠냐? 나랑 목사님을 만나야 겠는데."
  "야, 쬐개만 지둘리셔라." '왜 목사님을 만나는데 나를 댈고 가는 걸까? 내 잘못을 목사님 앞이서 회개기도 시킬라고 허는가. 허기사 머슴놈이 주인댁 딸하고 가당치도 안혔지. 멍석말이를 당해도 헐 말이 없는 것이지.'
  그래도 조대감은 마님 편을 안 들고 자석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아픈 자석에게 약까지 지어다 주셨는데 왜 자기를 찾는지 궁금증에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준비 되얐고만요."
  조대감은 앞장서 예배당으로 갔다.
  "자석아, 맘 많이 다쳤냐? 내가 사과 하마. 마님이 오해를 해서 한 행동이니 맘에 두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고만요. 지가 잘못했구만요. 자석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기가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기에 아버지 어머니도 자석을 나무라고 결국에는 가을걷이가 끝나는 대로 이 집을 나가기로 했다고 하지 않은가.
  "너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야"
  "사람은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법이지. 지금 세상은 배우고 싶으면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세상이지. 양반 상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열의가 있으면 되는 것이지."
  "야?" 자석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양반 상놈이 필요 없다니 그것은 성경에서나 하는 말이지 자기는 엄연히 종놈이 아니던가. 그래서 마님이 그렇게 화를 내고 멍석말이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예배당에는 목사님이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제가 지난번에 부탁드린 것 다 되었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 일이라면 준비 다 됐지요."
  "자석아 이리 가까이 오너라."
  자석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지 않았다. '도대체 뭔일이여. 왜 목사님꺼정 모시고.. 이놈의 돌대가리 빨리 생각을 해서 잘못을 빌어야 헐 것 아니여.'
  "자석아, 너 공부를 해 볼테냐. 소연이가 네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 내가 목사님께 부탁해서 네가 공부할 곳을 알아보았다."
  "고것이 무신 말씀이신지.." 자다가 홍두깨라더니 자석은 무슨 일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소연이도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여 너의 꿈을 펼치게 했으면 하더라. 공부란 모름지기 하고 싶고 열망이 있는 자가 해야 그 값어치가 있는 것이지. 내 너를 믿고 후원을 해 주려하니 사양 말았으면 한다."
  "조 집사님이 너에 대해 의론을 하시기에 너의 영특함을 내가 말씀 드렸다. 너를 후원해 주시겠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겠느냐. 너는 그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야."
  자석은 몸이 얼어붙어 굳었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네가 다닐 학교는 목사님께서 알아보시고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너는 곧 짐을 챙겨 가면 된다. 네 아비와 어미에게는 내가 잘 말할 것이고 학교 다니는 동안 학비와 생활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흑흑... 제가 어떻게. 흑.. 저같이 못난 것에게 흑흑 어르신 은혜를 어떻게 갚으라고 흑흑..."
  "열심히 해서 네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된다. 너를 넓고 크게 쓰려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지." 조대감은 자석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 주었다.
  "감사혀요. 이 은혜는 꼭 두 배 세배로 아니 몇십 배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갚을 것이구만요."
  "너에게 끝없는 하늘과 넓은 땅이 있다고? 이제 그것을 진짜 네 것으로 만들어 보거라. 오늘 너에게 새 이름을 줄 것이니 지성이니라. '지성소에 서리다'에서 가져온 지성으로 하였다. 우리 금산에 지성소가 되거라.”
  자석은 머리가 땅에 닿게 인사를 하고 목사님과 조대감에게 넙죽 큰절을 하였다.(끝)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