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표정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다. 앙증맞은 진분홍 꽃을 끊임없이 피우는 패랭이, 작지만 당당한 모습이 자꾸 들여다보게 한다. 화분에 옮겨 심고 바구니 장식을 했다. 어머님께 갖다드려야지. 딸아이 선생님도 생각나고, 고마운 분들이 떠올라 몇 개 더 만들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카네이션 화분을 챙긴다. 지난해에는 많이 준비해서 보건진료소에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드리고, 마을 회관에도 갖다 놓았다. 꽃잎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생긴 패랭이나 카네이션은 같은 석죽과에 속한다.

  패랭이는 카네이션에 비하면 엄지손톱만한 자잘한 꽃이 볼품없지만, 오랫동안 싱그러운 꽃을 피울 것이다. 이 꽃은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정에서 얻어다 심은 것이다. 손끝이 야무진 소사아저씨가 잔디처럼 가꿔 놓았는데 참 보기 좋았다. 사철패랭이라 불리는 이 녀석은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교장선생님께 비가 오면 좀 떠가겠다고 허락을 받고, 얻어다 심은 것이 뿌리를 잘 내려 준 것이다.

  그런데 꽃바구니를 만들어 놓고 그만 덜컥 입원을 하고 말았다. 약 먹으면 좋아지려니 버티다가 고생만 했다. 천식이 심해져서 폐렴으로 진행된 것이다. 흡입기를 쓰고 감기를 조심하며 나름 신경 쓰고 있지만, 일이년에 한번 꼴은 입원 치료를 받게 된다. 맘대로 되지 않는 질병이다.

  처음엔 특별한 원인도 없이 갑자기 발작처럼 발병했는데, 그 뒤론 안고 달래며 살고 있다. 아직 젊은데 무슨 꼴이람. 주의를 한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심해질 텐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어버이날에 입원이라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담.

  그렇지만 병원에 들어와 보니 내가 가진 질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후벽암이라는 특이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같은 병실에 있는데, 수술을 두 번이나 했지만 가망이 없다고 했다. 언제든지 하늘이 부르면 가야지요, 하며 보호자는 한숨을 쉬었다. 바로 옆의 환자는 당뇨로 인해 신장이 망가져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왔다. 평생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해야 한단다.

  그래, 내 문제는 별것 아니구나. 한 열흘 쉬면서 항생제 치료를 잘 받으면 호전될 것이니. 앞만 보고 막 달리고 있는데 잠깐 멈춰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 같았다. 모처럼 내가 잘살고 있나,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병원의 문고에서 빌린 '희망의 이유'라는 책에서 제인 구달을 만났기에.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뛰었다. 어려서부터 꿈꾸었던 아프리카 밀림의 삶을 이루어냈고, 연구소를 설립하여 동물과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쓸 때 나이가 육십이 넘었으니 자서전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침팬지와 함께 지낸 자료를 정리하고 발표했다면, 이제 나머지 삶은 얻은 지식을 나누는 시기라고 했다.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고, 우리나라 카이스트에서도 강의한 적이 있다.
 
  그녀와 비교해보니 나의 삶은 미미하기 그지없다고 여겨졌다. 지구를 누비며 보살피는 같은 꿈을 꾸었지만, 난 세계지도에서 보이지도 않는 시골에서 이름 없이 살고 있구나. 마치 크고 화려한 카네이션과 비교되는 패랭이처럼.

  하지만 그녀의 삶이 부럽긴 해도, 내가 초라해지거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 그녀는 침팬지의 눈빛을 읽어주는 삶이었다고 회고했지만, 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알아주며 살고 있지 않은가.

  사철, 방긋 웃어주는 내 삶을 기대한다. 패랭이꽃처럼.

▲ 사진:최진만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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