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태양이네 아빠는 광복절에 무슨 생각을 할까요?"
  딸아이가 이렇게 물었을 때 참 난감했지요.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인 태양이네 아빠는 일본인이거든요. 뒤로 묶은 머리가 즐겨 입는 한복과 잘 어울리는 그는, 아직 친해지진 않았지만 좋은 분이라 여기고 있지요.

  어떤 한국인이 그에게 말했다고 해요. '당신이 왜 여기 와서 살고 있는 줄 알아요?, 조상이 불렀기 때문이오. 백제의 후손이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해요. 일 때문에 일본을 갔다 왔다 하고 있지만, 한국에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좋으니 어쩌면...

  인류의 문명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지요. 한국인이 일본인과 DNA가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처럼, 우리 백제 사람들이 건너가서 일본을 이루었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그보다 앞서 대동 강변에 고조선을 설립했을 당시, 400년 동안 중국의 식민지 생활을 했던 우리는 어떤가요. 그래서 일본이나 우리글에는 한문이 섞이지 않는 곳이 없어요. 연결되어 있네요.

  태양이네 집은 열려있어요. 뒤뜰이 담장도 없이 마을과 통해 있으니까요. 방울토마토랑 고추가 심어진 채마밭을 지나면 개조하고 있는 중인 한옥이 나와요. 사랑채인 누각을 달아냈고, 이층엔 다락방이 생겼고, 부엌도 계속 변하고 있어요. 흙과 나무가 보고 싶어서 벽지도 뜯었대요. 손끝이 여문 태양이 아빠는 고치고 만들고 하는 것을 잘하고요. 그 옆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맞장구 쳐주는 태양이 엄마가 있어요.

  그 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이 있어요. 바로 오래된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 사이에 지은 트리하우스지요. 네 남자가 만든 이 나무위의 집은 이미 방송을 타서 알려져 있는데요. 지주를 따로 세우고, 살아있는 나무에는 못질을 하지 않았답니다. 초록이 한껏 드리워진 두 나무는 얼마나 건강한지요. 연초록 잎이 막 나올 때가 제일 예쁘다고 하더군요.

  트리하우스에 앉아있으면요, 삶의 짐이 저만큼 물러나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올 때부터 벌써 재밌어지잖아요. 그때 벗어던지나 봐요. 이곳에 데려와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는군요.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벽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들어와 어루만지니까요. 쉼을 얻는 자리가 되는 것이 이곳을 지은이들의 바램이래요.

  옆에다 방 한 칸을 더 들였는데 꼭 둥근 새집처럼 생겼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아늑해요. 이대로 한 숨 잤으면 좋겠어요. 왜 이리 사는 게 피곤한지요. 다리를 쭉 뻗고 내려다보니, 뒷마당에 낮달맞이꽃이 나비 떼가 내려앉은 듯 모여 있네요.

  밤에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과는 달리, 낮에만 꽃이 핀다하여 낮달맞이꽃이랍니다. 밤새 달님을 만나서 노니다가 아침에 시드는 달맞이꽃에 비해, 낮 내내 피어 달을 기다리다가 달이 뜨기도 전에 시들어 버리는 애달픈 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연분홍 얇은 꽃잎의 맥이 마치 실핏줄이 그대로 드러나는 맑은 피부를 지닌 소녀를 연상시켜요. 정감 있는 한국인과 닮은 꽃이지만, 멀리 멕시코에서 왔답니다. 특이하게도 꽃받침이 한쪽으로 몰려있어, 마치 목에 스카프를 감은 것처럼 멋스러워요

  그리고 '무언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졌습니다. 요란하게 말을 앞세우며 들이대는 시대에,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랑이라니. 같이 앉아있던 언니가 도종환님의 시를 읊조립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낮달맞이꽃은 아무 땅에서나 뿌리를 잘 내리고 추위에도 강하답니다. 한번 심어두면 매년 예쁜 꽃을 잘 피우는 다년생이고요. 아이들을 다섯이나 둔 태양이네 같다고나 할까요.

  딸에게 말해줘야겠어요. 일본과 한국의 다리가 되고 싶은 태양이 아빠의 바램을요.

▲ 사진: 최진만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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