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섭 전 금산중학교교감·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조사위원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해학적이고 여유가 넘쳐나는 근사한 말이란 것은 우리가 족히 잘 아는 사실이다. 하던 일에 신경을 안 쓰고 딴전을 피우는 사람에게 어른들은 흔히 "지국에 바람 들었네"라고 말한다. 여기서 지국은 김치를 의미하며 '바람 들었네'라는 뜻은 신 맛이 들어 맛이 갔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풍신나다'는 말의 어원은 '지국에 바람 들었네'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말로 가을 추수가 끝나면 봄에 먹을 무를 땅속에 묻어두는데 이듬 해 이른 봄 무를 꺼내서 보면 잘 못 묻어 바람이 들어간 것을 말한다. 즉 못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물 짠 놈'의 의미는 벽골제 중수한 시기까지 올라가는 옛 고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조 태종 때 벽골제를 전국의 장정들에게 동원령 내려 크게 대대적으로 보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지금의 신털미산(草鞋山)에 중수비(사적 111호)를 세우게 되는데 이 때 벽골제는 제 모습을 갖추었다고 사기는 전한다. 

  이때 동원된 장정들은 지게를 지고 땅떼기라는 노력동원을 하게 되는데 짚세기를 신고 작업하던 것이 여기저기에 널리 흩어져 환경의 오염을 가져오게 되고 이 짚세기의 흙을 털었다는 설과 짚세기를 모아 산을 이루니 이 때 동원된 장성의 수는 과히 짐작이 간다. 그래서 어떤 이는 노역의 산, 눈물의 산이 신털미산이라고 까지 말한다.

  이때 생겨난 논의 모양이 되배미논이 있었다. 전국에서 동원된 장정들의 작업배치를 위해서 지게를 지고 일정한 논에 가득 들어가면 500명이 되는 것으로 사람의 수를 세는 논이었다. 최근에 이 되배미논을 측량해 보니 610평이 되어서 아주 정확한 단위의 논이었다.

  이 장정들 중에서 작업배치를 하는데 완도 청해진이 해체된 후의 청해진에서 선발되어 온 장정도 있었다. 이 장정들은 사지는 멀쩡한데 지게를 질 줄 모르고 땅떼기를 할 줄 몰랐다. 말하자면 지게에 흙을 파서 지고 옮기는 일을 이 사람들은 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에 작업을 감독하는 십장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지면 옆의 장정이 "물 짠 놈 이어라오"라고 하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바다에서 물만 젖는 놈의 줄인 말이다. 청해진에서 물만 젖고 배를 타는 일만 해서 일을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놈이라는 뜻이 이렇게 우리 토속어가 된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고 해학적인 언어중의 하나가 '풍신 나고 물 짠 놈'이다.

  해학자이며 과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정평구가 제지방죽의 물오리를 집오리로 팔아먹었다는 설이 있는 제지방죽 역시 이 때 조성된 방죽으로 지금의 명금산 앞에 있었다고 한다. 제지방죽이란 이때 동원된 장정들이 추석이 다가오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명절을 보내게 되는데 제주도에서 동원된 장정들은 풍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이들의 울분을 달래주기 위해 제지방죽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정평구는 1592년 진주성 전투에서 비차를 만들어 포로가 된 장수를 구출해 낸 신출귀몰한 인물이다. 그 비차의 모형도가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일본의 사기에도 "전라도 김제에 사는 정평구가 비차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 썼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보다 311년이나 먼저 비행기 모형을 제작했다는 근거가 되는 샘이다.

  벽골제의 장성거가 있던 자리에 벽골제수리민속박물관이 세워지고 이곳에서 지평선축제가 매년 열리게 되는 데 지평선축제는 작년에 이어 금년까지 연속 2년째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이는 8년 연속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는 보람이 쌓아진 결과이기도 하다. 

  지평선축제는 고향의 가을로 떠나는 가을 소풍 같은 친근감이 따른다. 황운만리(黃雲萬里)에 펼쳐지는 황금들녘과 코스모스로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김제 들녘의 소풍잔치에는 학생들에게는 농촌체험활동을, 어른들에게는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또한 해외 관광객에게는 한국의 전통농경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뜻 깊은 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벽골제는 서기 303년에 건립되었으며 담수호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과학영농을 했다는 근거가 되는 저수지이다. 중수가 끝나 제대로 활용될 때의 저수지 둘레가 40여 km에 달했다니 그 규모 또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김제시에서는 벽골제를 복원해서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제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우리고장의 명예와 위상을 크게 빛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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