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특이합니다.

  아름다운 모양이나 고운 색도 없이 그저 수수하지요. 이십여 송이가 다발로 모여 두상꽃차례를 이루지만, 한 송이 한 송이 귀하게 따로 포장한 것처럼, 비닐 같은 것으로 싸져 있어요. 꽃대 아래로는 잎을 여러 겹 깔아서 꽃다발 장식을 한 것 같고요.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운다고 해서 관동화(款冬花)로도 불린답니다.

  머위 잎은 봄철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봄나물이지요. 시골에서는 부러 채마밭 가장자리 물기가 많은 곳에 심어, 봄마다 땅속줄기에서 솟아난 잎을 즐긴답니다. 양념된장과 함께 쌈을 싸먹어도 맛있고, 들깨가루와 함께 탕을 해먹는 맛도 그만이지요.

  머위의 새 움이 트는 걸 보면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고,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된장무침이 생각납니다. 입맛을 잃었다가도 쌉싸름한 그 나물에 밥을 비비면, 볼이 미어지게 들어가곤 했어요. 입맛이 돌아오는 것이지요. 입맛만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던 그 무엇이, 그 속엔 분명 있었습니다. 어미의 손끝이 힘을 준 것일까요?

  친정엄마는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사신 지 오래되었어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십니다. 바깥 활동을 거의 못하시고 방안에만 계시지만, 병원생활을 하도 많이 하시니, 집에 계실 정도만 되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엊그제는 친정아버님이 출타하셔서 엄마와 하룻밤 함께 지냈습니다. 저희 집으로 모셔오려고 했지만 극구 싫다고 하셔서요. 머위나물에 쓸 들깨소금을 만들고 있자니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엄마는 들깨소금을 만들 때마다 절구통에 조금 남겨서, 따뜻한 밥을 비벼주셨었어요.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내려주는 것이라지만, 조금이라도 더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그런데 모처럼 준비해서 가져간 머위를 엄마는 조금도 못 드셨어요. 밥도 부드러운 미역국에 말아서 억지로 드셨네요. 매운 김치도 못 먹고 푸성귀 반찬도 안 넘어간다고 하셔요. 뭐가 먹고 싶으시냐고 해도, 그저 고개만 저으시네요.

  전화기 옆에는 제 핸드폰 번호가 크게 써져 있습니다. 엄마는 자주 저에게 전화를 걸으셔요. 그러시곤 네 번호 잊어버릴까봐 걸었다고만 하시고 금방 끊으시지요. 어느 날은 번호가 잘 안 눌러져서 애를 태웠다고도 하시고요. 연거푸 전화를 하시고는 방금 전에 통화한 것도 기억을 못하십니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간혹 저에게 네, 네, 하고 대답할 때가 있습니다. 딸인 것도 깜빡 잊어버리시는 게지요. 그럼 얼른 손을 붙잡고 흔들면서 엄마를 자꾸 부릅니다. '엄마, 사람들이 날더러 엄마를 많이 닮았데요. 나이를 먹으니까 엄마 얼굴이 나온데...' 가슴에 눈물이 고입니다. 우리 엄마!

  이제 더 살아서 뭐하냐고, 엄마는 허망해 하십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젤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물었더니, 생각 안 난다고 하셔요. '제일 힘들었을 때는요?' 하고 물었더니 한숨처럼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노상 힘들었지'

  엄마, 어느새 머위가 꽃을 피웠어요. 머위는 엄마가 살아오신 인생처럼 쓴맛이지만 봄마다 기운을 주고 우리를 살려요. 엄마처럼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