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한 해의 끝이다. 자신에게 묻는다. 혹,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없는가. 저 태양이 지기 전에 꼭 챙겨야 할 것은 없는가. 자꾸 두리번거려지고 살펴진다.

  늘 그래왔던 것들이 새삼스레,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맘때,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고, 해 뜨고 지는 모습도 애틋하게 바라봐진다. 무심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끝이라는 특별한 시간! 왜 매번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걸까, 청춘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십이월은 연습 없는 인생에 허락된, 유일한 기회인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마침표를 놓치지 말자.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헤아려본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얼마인지, 대화는 자주 하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진 않은지, 다음에 하면 된다고 미루진 않는지...

  우리는 매일 기적 속에 살고 있다. 무사히 곁에 있어 가족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 지금이 얼마나 절박한지 깨어있고 싶다. 그날이 그날이려니 무뎌지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

  복(福)은 한자를 풀어보면 넓게 보는 거다. 반대 개념을 알면 뜻이 더 분명해지는데 화(禍)는 허물을 보는 것이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좋은 점을 보기로, 새해 목표를 삼는다. 전에는 장점이 먼저 보였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울리는 옷차림이 눈에 띄었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지. '예뻐요. 좋은 일 있나 봐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마음도 유연함을 잃고 뻣뻣해졌다. 그 사람의 잘못이 먼저 생각났다. 섭섭했던 일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행, 불행은 자신의 관념이다. 미운 것도 원망스러운 것도 그 사람 탓이 아니다. 내 마음의 상태다. 그 사람이 곧 나다. 자신을 바라볼 때도 잘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북돋아 주자. 절대자가 용서하지 못하는 단 한 가지는 희망을 잃는 것이라지 않은가.

  어차피 삶은 가시밭길이다. 순탄하게 살아와서 아직 바닥에 내동댕이 쳐본 일이 없다고 하는 젊은 사람이 있다면, 조금만 더 살아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인생은 고달프다. 더구나 나이 들면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즐거운 일은 빨리 지나가고 힘든 일은 더디게 지나갈 뿐, 인생은 흘러간다. 엊그제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서 세밑에 와있지 않은가.

  이렇게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인생길을, 마음을 즐거운 쪽으로 운전하면서 가자. 사람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부대끼며 살다보면 감동을 느낄만한 일이 많지 않다. 그러니 받으려 하지 말고 내가 하자.

  내가 곧잘 감동하는 녀석이 있는데, 바로 곰보배추다. 그는 봄동과 비슷하게 생겼다. 곰보배추라는 재미난 이름은 뿌리가 배추 뿌리처럼 생긴데다 잎 표면이 올록볼록해서 붙여졌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문둥이 배추'로 불린다.

  이름처럼 못생겼지만, 오월 말이면 꽃대를 올려 연보라색의 작은 꽃을 피운다. 칠월에는 씨앗을 떨어쳐 새순을 내고, 무럭무럭 자란다. 겨울엔 땅에 바짝 엎드린 채 엄동설한 추위와 맞장을 뜨며 한겨울을 보낸다. 그동안 영양분은 뿌리로 모두 몰리기 때문에 겨울을 난 곰보배추의 약효를 최고로 친다. 역경 속에서도 당당하게 초록을 잃지 않는 멋진 녀석이다.

  몇 포기 얻어다 뒤뜰에 심었더니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기관지가 약한 나는 솎아다가 말려서 물을 끓여 먹는다. 병이 걸려서 몸을 챙기게 되었으니 그것도 괜찮다.

  아자! 좋은 면을 볼 줄 아는 복된 새해를 기대한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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