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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안시성·장동국을 만나다

  우리시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도예가 안시성씨와 장동국씨가 지난 연말 나란히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간 우리시에는 도예분야 무형문화재 지정이 전무한 상태였고, 하필 도예분야에서 2명의 작가가 동시에 심사를 받는 터여서 우려도 있었지만, 2명의 작가 모두 출중한 실력에 역사성까지 겸비하고 있어 무난히 전북도의 심사를 통과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안시성·장동국씨는 둘 다 우리시 출신이 아니다. 안시성씨는 1995년에 군산시에서 백산면으로, 장동국씨는 2004년에 경기도 이천에서 부량면으로 옮겨와 터를 잡았다.

  하지만 이들의 김제사랑은 수대째 김제에 살아온 토박이 못지 않다. 안시성씨는 부거리 옹기가마터에서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키워오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완성했기 때문에 김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장동국씨도 "모든 기술은 이천에서 배웠지만, 실제로 꽃을 피운 것은 김제다"며 늘 김제시민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한결같은 마음이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된 옹기장 안시성씨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된 사기장(분청사기) 장동국씨를 각각 그들의 작업장에서 만났다.

 

"옹기마을의 자부심으로 남고 싶다"

안시성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3호 옹기장

  옹기장 안시성작가는 1966년 군산시 조촌동 출생으로 군산시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원광대 미술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미술감각이 탁월해 소조부문에 두각을 보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후 도예과에 입학하면서 전문적으로 토기 및 자기분야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연마했다.

  그는 1992년 원광대 미술대학 도예학과를 졸업한 후 부거리 옹기마을에 들어왔다. 부거리 옹기마을은 조선말 천주교박해를 피해온 이주민들이 옹기를 구어 생업을 유지하고자 생성되었던 곳으로 안 작가는 이곳에서 당시 옹기장인으로 명망이 높았던 고 변동순선생으로부터 전라도옹기의 특징인 쳇바퀴태렴을 사사받는 등 선생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전통옹기만들기의 비법을 전과정에 걸쳐 전수받았다.

  또 부거리 옹기마을에 남아 있는 옹기가마를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403호로 등록시킨 바 있으며, 전통옹기 작업장과 가마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등 전통옹기를 복원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 작가가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 곳의 새주소는 '백산면 옹기가마길 10'이다. 안작가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이곳의 새주소도 '옹기가마길'이 되지 못했을 것이며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403호'는 헐리고 배추밭으로 변했을 것이다.


무형문화재 선정 소감은?

  어렵고 불편한 시골살림임에도 옆에서 든든히 지켜준 가족들께 감사하고, 힘들때마다 주변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은 더 잘하라는 굴레일 수 있다. 초심으로 열심히 하겠다. 

옹기는 어떤 그릇인가?

  옹기가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다보니 천민의 그릇으로 평가절하되었던 긴 세월이 있었다. 옹기는 물독, 간장병, 함지박, 오줌장군, 옹관묘 등 우리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발효식품이 많은 우리 전통 음식을 담을 가장 한국적인 그릇이 옹기이다. 숨쉬는 그릇 옹기에 최근 외국인들의 관심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 기능성과 조형성을 함께 갖춘 옹기처럼 과학적인 그릇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간 어려웠던 점은?

  처음 옹기마을에 들어올때 천민의 그릇이라는 옹기와의 악연(?)을 끊고자 동네분들이 옹기가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었다. 과거에 옹기하는 사람이라면 선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니 동네분들의 한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제는 옹기가마가 국가지정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동네분들도 자부심을 느끼며 호응과 협조를 해 주신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간 자랑스러운 전통옹기기법을 널리 알리고자 수많은 체험객 및 외국인들을 상대로 옹기체험, 가마불때기행사, 외국인들과의 예술적 교류활동을 해왔다. 앞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옹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박물관도 옹기마을에 건립하고 싶다. 동네를 옹기마을로 꽃피워 마을의 자부심이 되게 하겠다.

 

"이 시대 대변하는 도자기 만들고파"

장동국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4호 사기장

  사기장(분청사기) 장동국작가는 1955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해 15살때부터 도자기를 시작했다. 도자기가 가장 활발한 꽃을 피우고 있는 이천에도 어린나이에 고려도요에 입문해 혹독한 고생과 함께 기본기를 다졌다. 18세는 경기도 광주요에서 연수를 받았고, 5년뒤 해강청자연구소, 다시 6년뒤 석촌도예를 거치면서 도자기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두루 섭렵했다.

  고려도요 지순택씨, 광주요 조소수씨, 해강도자 유근영씨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나라 분청사기의 전승을 위해 46년 동안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분청사기의 기법인 상감, 인화, 박지기법에 있어 전래하여 이어온 전통기법으로 실제기능을 원형대로 제작기법을 완벽하게 터득하여 재현에 성공하였으며, 17회의 개인전, 11회에 걸친 협회전등 전통 분청사기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김제로 내려오기까지 많은 전시와 각종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50여년동안 많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배웠으나, 정작 본인의 작품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곳은 김제다"며 벽골제 일원에서 활발한 전승활동과 체험활동을 하면서 지역문화와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그는 지금도 흙에 땀을 쏟고 가마에 불을 지피며 영원히 간직될 걸작을 꿈꾸고 있다.


무형문화재 선정 소감은?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다. 전에는 때론 쉽게 만들고 값싸게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좀 더 신중해야하고, 기존의 무형문화재 분들의 형평에 맞도록 값도 매겨야하니 심적 부담도 따른다.

분청사기는 무엇인가?

  청자는 단아한 귀족사회 혜택의 도자기인 반면, 분청사기는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라 할 수 있다.
  분청을 좋아하는 인구가 많아진 이유는 분청을 보고있으면 친밀감이 느껴지고, 현대인들의 쟈유분방한 사고와 맞는다.

그간 어렵거나 아쉬웠던 점은?

  처음 김제시의 초청으로 벽골제창작스튜디오로 내려올 때 만해도 객지이다보니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김제시민들이 너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김제로 내려온 것이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김제도 도자기를 만드는 곳인데, 도자기하면 대부분 인근 고창이나 부안을 떠올리는게 아쉽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도자기에 상감기법을 쓰고 있다. 우리 도자기가 세계로 뻗어갈 길이 많다고 생각한다. 도자기마다 각기 특성이 있고, 시대마다 다른 도자기가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대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김제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김제시민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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