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손바닥만 하구나. 어릴 적 이 운동장은 어찌 그리 넓어 보였던지, 온 우주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았어. 흘러간 세월의 폭이 눈앞에 보인다.

  '오징어살이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운동장으로 부리나케 모여들었지. 이제 다시는 유년으로 가볼 수 없으리, 눈을 지그시 감는데, 갑자기 빈 교정에 차임벨이 울린다. '깊은 사안속 오옹달샘 리라리라리라라'. 휴일인데, 벨 끄는 것을 잊었나 보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일까? 잽싸게 뛰어 들어가 내 자리에 앉고 싶구나. 그 때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빨간 벽돌과 스텐막대기로 바뀐 담장에 아이들은 더 이상 낙서를 할 수 없겠지. 추억이 꽁꽁 숨어버려 찾기가 어렵구나. 양초를 문질러서 닦았던 마루도, 솔방울을 주어다 불을 피웠던 난로도 없어졌지.

  아, 저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던 우물도 보이지 않는다. 교실엔 동그란 유리어항이 있었지. 금붕어가 요리조리 물을 가르다가 몸을 뒤채면, 한순간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반짝였어. 그 순간을 꿈꾸듯이 바라보곤 했지. 그런 황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는지도 몰라. 당번이 되어 물을 갈아주러 가다가, 그만 뛰어오던 머슴애와 부딪히고 말았어. 어쩌면 좋아, 박살나버린 어항을. 모래에 묻혀 펄떡거리던 금붕어를 얼른 치마폭에 주워 담았어.

  집안형편을 눈치 챈 나이였을까. 밤새 끙끙거렸지. 다음날 책보를 매고 마루 끝에 서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털어놓았어. "둘이서 반씩 돈을 내어 어항을 사야 한대요." 엄마는 한숨을 쉬셨지. 그냥 학교에 가라고 등 떠밀려 나섰지만, 길가에 주저앉아 버렸어. 마악 모를 심어놓은 논마다 물이 넘실거리는데, 개구리들도 합창을 안 하고 나를 따라서 울더구나. 언제 오셨을까. 나를 일으켜 세운 엄마는 동전 여덟 개를 내 손에 쥐어주셨어. 50환짜리... 지금은 자식들에게 나눠준 부모의 삶처럼 사라져 버리고 없구나.

  제트기가 남긴 흰 줄에 올라타느라 늘상 올려다보던 고개를, 지금은 왜 자꾸 떨구게 되는 걸까. 하늘을 마음대로 조몰락거렸건만, 꿈들을 모조리 가지치기해야만 하는 게 인생인 것을 이젠 알았지. 그럼에도 돌아오지 않는 머슴애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운동장에서 주워 넣은 호주머니의 돌멩이를, 그 때 꾸었던 꿈인 양, 만지작거리면서.

  그런데 오늘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엘 갔다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한 귀퉁이를 다시 만났어. 공개수업을 하는데, 교실 뒤쪽에서 토끼가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졸라서 토끼를 기르고 있대. 먼저 교장선생님께 여쭤 봤는데, 동물을 좋아하셔서 흔쾌히 허락하셨고. 아이들은 용돈을 모아서 마른 건초도 사고 철망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런데 그만 그중에 한 마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지.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간 딸이 발견했다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친구들과 함께 묻어주면서 토끼처럼 눈이 빨개졌다고 해.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모두 토끼 옆으로 몰려들었어. 이름을 구름이라고 지었대. 세상에 이런 교실이 있다니!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게시판으로는 모자라, 창문마다 붙어있는데, 제목도 내용도 가지가지 상상력이 막히지 않고 표현되어 있네. 젊고 멋진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은 주말에 만나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지.

  끝나고 나오면서 교문 옆에서, 무리지어 피어있는 마가렛을 만났어. 잎사귀는 쑥갓하고 비슷하고, 꽃의 가운데가 황금색이야. 하얀 꽃잎이 단정하게 둘러 피어있는데, 산뜻한 모습이 아기 토끼를 닮았네.

  마가렛은 '미래를 점치다'라는 꽃말을 가졌는데, 활짝 핀 모습이, 밝은 앞날을 미리 보여 주는 것 같았어.

▲ 사진 : 나채홍(종정처 6학년)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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