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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자의 금연도전기 ②

  담배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과 향이 있다. 굳이 담배에 대한 학문적 정의를 내리자면 형식적의미의 담배와 실질적의미의 담배로 나뉜다.  형식적의미의 담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담배의 외관 그 자체, 즉 담배잎을 잘게 썰어 말린 뒤 필터와 함께 담배종이에 말아 놓은 것 정도로 정의 할 수 있겠다.

  실질적의미의 담배는 쉽게 맵고 텁텁한 맛을 가진 '일반담배'와 박하사탕 또는 페퍼민트 비슷한 향이 돋보이는 '멘솔담배'로 구분지을 수 있다. 담배의 기능과 역할은 같지만 단순히 맛과 향으로 구분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의미의 담배와 그 의미를 달리한다.

  담배를 형식적의미와 실질적의미로 나누는 학문적 기준이 실제로 존재 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애연가로서 보다 쉽게 비흡연자들에게 담배를 이해 시키기 위해 스스로 정의한 개똥철학(?)이므로 이 같은 정의에 이의를 달지 않았으면 한다.
 

  금연결심 첫날, 막상 "담배를 끊겠다" 선언을 했지만 도무지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오죽했으면 "세상의 진귀하고 맛 좋은 담배는 많고 그 중 맛을 본 담배의 수가 너무 적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금연의 실행을 차일피일 미뤘다.

  도둑질도 처음이 어려운 법이지 막상 하루 이틀 양심을 속이고 몰래 흡연을 이어가니 나름 숨어피우는 노하우(?)도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몇일동안 태웠던 담배맛이 왜이렇게 꿀맛처럼 느껴졌는지 이해가 안간다. 이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뒤로한 채 "나는 곧 담배를 끊을 거니까, 금단현상? 까짓것 그냥 참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5일동안 여러종류의 담배연기를 신나게 음미했다.

  그렇게 나의 금연계획은 시작부터 삐딱선을 유지하며 허공을 맴돌고 있었고, 지난호 "시민들과 공감하는 '금연도전기'를 연재하겠다"던 포부가 담긴 신문은 그 빛이 바랜 채 우리시 곳곳에 배포되고 있었다.

  신문의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금연도전기'를 읽어본 지인들의 응원이 이어지는가 하면, 심지어는 스크랩까지 해놓고 금연성공을 기원하는 지인도 있었다.  지인 및 가족들의 응원이 이어지자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금 금연결심을 하고 그 길로 20개피들이 담배 중 겨우 3개피를 피운, 새것과도 같은 담배를 눈물을 머금고 모조리 반으로 부러트렸다. 담배 한갑에 4500원이니 순식간에 3825원을 길바닥에 내다버린 셈이다.

  첫날은 그냥저냥 참을만 했다. 간혹 흡연욕구가 치솟았지만 "이정도 금단증상이면 참을만 한데?"라는 생각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둘째 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이 조금씩 가렵기 시작하더니 온통 머리속이 담배생각으로 가득했다.

  "뭐야 이거... 어제와는 다르잖아?" 둘째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당혹감이 밀려왔다. 첫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흡연욕구가 온 몸을 휘감더니만 이제 막 잠에서 깬 비몽사몽의 단계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곧바로 입맛을 다시며 "아 담배 피우고 싶다"라는 탄식 섞인 한마디를 나즈막히 내뱉었다.

  베개맡에 덩그라니 앉아 한참을 담배에 대한 욕구와 씨름한 뒤 문득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이 훌쩍 지나 허둥지둥 출근준비를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해 여느날과 똑같이 따뜻한 커피를 훌쩍이며 평소 흡연했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맞다, 나 담배 끊었지..." 무의식에 기인한 습관이라는게 이토록 무섭다.

  오전 내내 원인모를 불안과 초초함에 시달리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딱히 불안해 할 것도, 초초해 할 것도 없는데 무작정 군입대 하루 전날과 같은 불쾌한 기분이 지속됐다. 그렇게 일을 하는둥 마는둥 오전을 보내니 어느새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식사 후 흡연(일명 식후땡)이 선사하는 만족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느때 보다도 편안해야 할 시간이 무척이나 고역스러웠다.

  "평소 피우던 담배보다 순한담배로 조금씩 줄이며 끊어볼까? 아니면, 마지막 담배의 맛을 느끼며 금연을 할 수 있도록 딱 한대만 피워볼까?, 괜히 금연한다고 설레발을 쳐놓았나?" 오후들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자'는 내 안의 나와 '절대 타협 불가'를 외치는 또 다른 내가 한바탕 전쟁을 치를 채비를 갖추며 본격적인 금단현상에 대한 선전포고를 외쳤다.

  결과는 '평소 피우던 담배보다 순한담배로 조금씩 줄이며 끊자'는 쪽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내심 원하던(?) 결론인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달음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 시중에 유통되는 담배 중 니코틴과 타르가 가장 적어 순하다는 평을 얻고 있는 담배를 골라 입에 물었다.

  금연시작 29시간여만에 '의지박약'으로 인해 또다시 무저지는 순간이었다.  흡연자라면 담배갑 겉표지에 표시된 니코틴과 타르의 함유량에 민감하다. 이 숫자는 처음 담배에 불을 붙여 흡입했을 때 담배연기의 깊은 맛을 좌지우지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흡연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수치이다.

  이 외에도 다른 중요한 한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지난호에 언급한 바와 같이 담배 한개피에는 수천가지의 화학물질과 발암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수천가지 중 니코틴과 타르라는 2가지에도 민감하게 반응 할 정도면 흡연자 역시 무의식 중에 건강걱정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흡연자의 주변환경, 습관, 컨디션, 인식, 감성 등 개인차에 따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앞선 2가지로 나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미필적고의로 몸을 죽이면서 건강생각을 하고 있다니.. 죽어도 서서히 수명이 단축되라는 스스로에게 잔인한 형벌을 부과하고 있는 셈이다.  니코틴·타르의 수치가 낮을수록 '순한담배'라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결코 수치가 낮다고 해서 순하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자책감의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나에 대한 자괴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혼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기관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 보건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금연클리닉의 문을 두드렸다.

 -다음호에 계속-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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