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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자의 금연도전기 ④

 

지난 황금연휴 기간 모처럼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모임에 참석했다. 대부분의 친목모임이 그렇듯 식사와 함께 심심치 않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술'이다.  이 '술'이라는 녀석은 적당히 가까이 하면 긴장감을 해소시켜 꽤 좋은 친구인 반면 한편으로는 굳은 결심 내지는 의지에 대해 한 없이 관대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도 수행해 특히 흡연욕구를 참고 있는 나에게 있어 항상 경계대상 1호 이다.

  "금연하겠다" 선언 이후 여느때와 같이 흡연욕구가 파고들 틈을 내어 주지 않기 위해 각종 모임 등 가급적 흡연분위기에 노출된 곳을 피했다. 하지만 이 날은 십여년만에 연락이 된 친구가 모임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없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약속장소에 10여분 쯤 늦게 도착한 나는 먼저 친구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제스쳐와 함께 이곳으로 이끈 그 친구를 찾았고, 테이블 한 쪽 귀퉁이에서 나를 향해 반갑게 손 흔드는 오래된 벗과 해후했다.

  "오랫만이다. 잘지냈지?"라는 짧은 포옹와 함께 친구와 나는 자연스레 술잔을 기울이며 그간 서로 살아왔던 이야기를 비롯해 최근 또래의 최대 관심사인 결혼문제 등 그간 함께 공유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대화들로 이야기 꽃을 활짝 피웠다.  한창 이런저런 소식들로 대화가 무르익은 만큼 취기 또한 어느정도 흥건히 올라왔을 때 즈음 문득 그 친구는 "요즘 담배 때문에 오매불망 한다며?"라고 내게 물었다. 아마도 먼저 도착한 친구는 내가 도착하기 전 다른 친들에게 최근 내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담배이야기에 나는 쓴 미소를 뒤로한 채 "까짓것 참을만 하다"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순간 그때 그시절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담배불을 나누던 추억은 또 왜이리 달콤하게 떠오르는지... 이때부터 모임은 오랫만에 만난 벗들과의 흥겨운 자리인 동시에 치솟는 흡연욕구를 억누르는 수행의 장소로 변해 좌불안석이었다.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식사자리가 끝이 났고 친구들은 추억을 안주삼아 본격적인 수다를 떨기 전 좀전에 마셨던 술을 깨기 위해 인근 카페에 들러 짧은 티타임을 갖은 후 다음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더이상 '술'과 함께하면 '금연도전기'를 연재하면서 까지 다져온 각오가 나도 모르는 사이 한순간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술을 잘 못하는 친구들과 카페에 남아 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합류하기로 하고 흡연자가 대부분인 악의무리(?)들을 떠나 보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잔잔한 클레식이 흐르는 카페로 배경이 바뀌고 또 삶에 지친 모든이들의 근심걱정을 따듯하게 보듬어 줄 것 같은 노란색 계열의 아늑한 조명은 왜 이리 완벽한지, 이내 곧 우리들은 가벼운 주제에서 벗어나 비정규직·내집마련 등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의 방향을 틀었다.

  대화의 주제에 무게가 더해질수록 시대상황을 담은 내용에 격하게 동화된 나는 숨이 막혀 견딜수 없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마냥 답답한 가슴을 삭히려 근처 편의점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담배를 구입해 입에 물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의 청년들과 출구 없는 터널을 함께 걷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명분을 빌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기 까지 불과 몇초, 그 찰나의 순간에 본능처럼 굳어진 습관은 이성을 압도했다.

  담배잎에 불이 붙자 마치 조금 전까지 담배를 피운 사람마냥 자연스레 연기를 폐속 깊은 곳 까지 빨아들였고, 매쾌한 연기는 내 들숨이 인도하는 대로 후두부를 강타한 뒤 폐세포와 연결된 혈관을 따라 뇌에 니코틴을 공급한 후 날숨에 섞여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한달여 만에 갑작스레 담배 맛을 본 내 몸의 온 신경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요동치기 시작했으며, 이 마저도 부족해 극심한 현기증을 흉기삼아 그간 축적하지 못한 니코틴을 강제로 요구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그동안 이를 악물고 금단현상을 참아낸 내 모든 수고가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자괴감과 함께 딱 이정도인 내 자신이 한심하고 수치스러웠다. 그토록 흡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사실이 서러워 눈물까지 흘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어디선가 갑자기 들려온 요란한 소리에 놀라 눈이 번쩍 띄였다. 지난밤 잠들기 전 머리맡에 놓아둔 자명종시계가 게으름뱅이 주인을 깨우기 위해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잠에서 깬 나는 조금전 상황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점을 인식하기 위해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 꿈이였구나..."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흡연시 행해지는 모든 메커니즘이 생생했다. 심지어는 연기가 목을 타고 넘어갈때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까지도 실제흡연과 너무 흡사했다. 금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설처럼 내려온 '흡연몽'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심지어 얼마나 생생했으면 꿈속에서 흘렸던 눈물이 현실에서도 맺혀있었다. 군대에 두번 끌려가는 꿈도 이처럼 서럽지는 않았다.

  "휴,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이 모든것이 꿈이였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완전금연을 선언한지 한달여, 2주차부터 서서히 손떨림, 어지러움, 가슴두근거림 등 신체적 고통은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그 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한개피라도 피워보려 자기합리화를 시도하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채우고 있다. 때문에 요즘들어 욕구불반에서 기인한 짜증이 부쩍 늘었다.
 

  보건소에서는 "금단현상 중 하나로 이내 곧 사라진다"고 하니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이제 어느정도 요령이 생겨 순간적인 흡연욕구를 제어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해야 할까? 이토록 중독성이 강한 담배를 잘 참고 있는 내 자신이 측은하면서 자랑스럽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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