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의회가 올해부터 주민숙원사업비(재량사업비)를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ㄱ 전 도의원이 특정업체에 공사를 주고 26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것이 촉매제가 됐다.

  지난 25일에도 도의원 재직시절에 재량사업비를 특정업체에 몰아준 뒤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전 전북도의원 ㄴ씨가 전주지검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재량사업비가 의원 개인의 선심성 예산과 쌈짓돈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상황에서 동료 의원의 구속사태까지 목격한 도의회는 쇄신 차원으로 올해 세워져 있는 예산까지 추경에서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때를 같이해 지난 15일 전라북도공무원노조도 지방의원 재량사업비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법령이나 조례에도 근거가 없는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 의원의 재량으로 예산이 집행됨과 동시에 예산 사용처를 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산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 등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고 폐지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어 "전국의 광역 시도 의회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게 재량사업비를 운영해 오고 있는 전국 기초 시군구 의회에서도 주민들로부터 신뢰받고 투명한 의회를 만들기 위해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를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최근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이 재량사업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업자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북도의회의 재량사업비는 총 190억원가량으로 의원당 5억5천만원꼴이고, 기초의회는 대략 1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군산시는 지난해 13억, 올해 15억원의 재량사업비가 편성됐고, 정읍시는 올해 본예산에 4억6190만원을 편성했다가 1회추경예산에 1억1750만원을 더해 총 5억7940만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우리시는 유독 주민숙원사업비(재량사업비)가 도내 최고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47억9500만원을 세워 사용하더니, 올해는 본예산에 35억9천을 편성한 것도 모자라 1회추경예산에 31억5천만원을 더해 총 67억4천만원을 세웠다. 군산시의 4.5배, 정읍시에 비하면 무려 11.6배다.

  공교롭게도 전북도의회가 재량사업비 전면 폐지를 발표하고 도공노조가 지방의원 재량사업비 폐지를 요구한 당일 우리시의회 예산결산위원들은 의원들 스스로 자신들의 재량사업비를 심사하고 있었다. 1회추경에 세워진 예산은 모두 시민의 혈세인 시비로 19개 읍면동에 1억5천만원씩(28억5천) 세우고, 예산서에 표기되지는 않지만, 묵시적으로 비례대표시의원 2명의 몫(3억)까지 챙기고 있다.

  시 집행부가 세워서 시의회에 제출된 재량사업비는 고양이에게 맡겨진 생선처럼 비늘도 벗겨지지 않은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스란히 승인됐다.

  일부 시의원들은 '주민숙원사업비'와 '재량사업비'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올해 본예산과 추경에 각각 비례대표 시의원 몫으로 1억5천씩 3억을 추가로 세우므로해서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결국 올해 본예산과 1회추경예산을 합해 19개 읍면동 몫으로 3억원씩 57억원이 세워졌고, 이를 지역구의원수로 나누면 1인당 4억7500만원 꼴이다. 매년 이 많은 돈을 자신의 주머니 돈처럼 유권자를 상대로 선심을 쓰니, 대충 놀면서 4년을 때워도 다음선거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연출된다. 읍면동수는 19개지만 중선거구제가 되면서 지역구 시의원수는 12명이기 때문에 시의원을 배출하지 못하는 지역이 최소 7개가 된다. 이 곳에 대한 재량사업비는 선심을 먼저쓰는 의원의 낯이 나기 때문에 의원들간에 소소한 분쟁과 알력도 상당하다. 게다가 같은 지역구 소속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최대 적이기 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사업을 서로 다른 의원끼리 서로 자신이 했다고 홍보한다.

  또 의원간의 분쟁을 줄이기 위해 19개 읍면동에 일률적으로 똑같은 예산을 배정하는 것도 문제다. 읍면동간 면적의 차이가 크게는 3.7배에 달하고 인구도 최대 9.6배의 차이가 나는데도 같은 예산을 배정하다보니, 어떤 지역은 돈이 남아돌아 통행이 뜸한 소로까지 포장을 하는가하면, 어떤 지역은 꼭 필요한 곳도 예산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이다.

  시의회는 예산을 심사 의결만 할 뿐, 예산편성권이 없다. 시의원들은 선거가 돌아오기 때문에 지역에서 많은 선심을 쓸 수 있도록 예산이 필요하다. 시 집행부는 내년 지방선거용으로 사상유래를 찾기 어려운 엄청난 재량사업비를 편성해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서울장학숙 설립사업 출연금 지원동의를 얻어내는가하면 보훈회관 건립비용이나 지평선산단 미분양용지 매입비 등을 전액 승인받았다. 시의원들은 자신들의 책무인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달콤한 엿과 바꿔 먹었다.

  시의원들은 시장의 예산편성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주민들로부터 신뢰받고 투명한 의회를 만들 수 있다.

  또 시민과 시민단체들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시정과 의정을 살펴야 한다. 우리가 눈감고 있는 사이 짜고치는 고스톱이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다.

홍성근 기자  hong@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