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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62. 아카시

 

사진: 나인권

여기로 오세요. 바람이 버찌가 달린 나뭇가지를 건들고, 붓꽃 향을 묻히고, 수면위로 미끄럼타고 와서, 볼을 어루만져요.

  호수 가운데의 분수가 시원하게 솟아오릅니다. 수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진주 구슬을 쏟아놓은 것처럼 아름다워요. 키 큰 침엽수 숲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내네요. 어둠이 내리면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로워지고요.

  얼마 전에는 아카시 꽃향기가 진동했답니다. 어머, 이 향기 정말 좋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저도 숨을 깊이 들어 마셨습니다. 교통사고로 후각을 잃어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예전의 향기를 기억해내려고 애씁니다. 꽃을 먹고, 잎을 따며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고, 줄기로 곱슬머리를 만들기도 했던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지요. 그런데 어느새, 꽃은 다 지고 흔적도 없군요.

  손바닥만 한 잉어가 물 밖이 궁금한지 잽싸게 튀어 오릅니다. 간혹 첨벙 소리에 돌아보면, 물보라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녀석이 궁금했었는데, 오늘은 모습을 보여주네요. 방죽 안에는 물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다닙니다.

  편백나무 숲 평상에서 함께 간식을 먹을까요. 잔잔한 음악도 깔았어요. 새들도 합창을 준비했는데, 뻐꾸기도 한몫 거드네요. 이곳은 바로 당신의 정원이에요. 자연은 누리는 자의 것이지요. 바라보는 순간 내 것이 되는걸요.

  산책로를 반쯤 돌았는데 갑자기 '이보게' 하는 소리에 걸음을 주춤했습니다. 황소개구리가 큰 저음으로 아는 척을 해요. 잘 살고 있는가 하고 묻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보다는, 자연과 발맞추며 살고 싶은데요. 천천히 가고 싶어도, 같이 휩쓸리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니, 한숨 돌릴 새가 어디 있겠어요.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흐르고, 항상 모자란 것일까요.

  그래도요, 오늘은 짬을 내보세요. 조금 있으면 반딧불이가 보일 거예요. 환경오염으로 거의 사라져 쉽게 볼 수 없는데, 작년에 여기서 만나 얼마나 반갑던지요. 올해도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유월이면 빛을 내며 활동하기 시작하잖아요. 봄철엔 애벌레로 다슬기를 먹으며 수중생활을 하고, 지금쯤은 번데기로 땅 속에서 캄캄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테지요. 그렇게 오랜 기간을 준비하지만, 반딧불이의 수명은 겨우 보름도 안 된답니다. 이슬을 먹고 살다가, 알을 낳고 그만 죽고 말아요. 너무나도 허망하군요.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지만, 그러나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제대로 알 수 없고 지나가버린 후에야, 겨우 그 느낌만을 더듬어보잖아요. 하지만 남은 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어요. 지금이 곧 청춘 아닌가요. 현재를 놓치지 말자고요.

  호숫가를 한 바퀴 거의 돌면, 모여서 핀 노랑어리연꽃을 만납니다. 꼿꼿이 서있는 작은 노랑꽃이 촛불을 밝혀 든 듯해요. 물위에 동동 떠있는 수련꽃들은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요. 부리가 붉은 논병아리가 연잎을 밟으면서 징검다리놀이를 즐기네요.

  하지만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루미의 시를 빌리자면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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