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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63

63. 천년초

사진: 나인권

오기로 한 그 사람이 소식이 없어요. 혹여 더 아픈 건 아닐까, 걱정되네요. 암으로 진단 받고도 항암치료는 받지 않고, 주변정리를 하겠다고 하고선 말이에요.

  동갑내기 친구 같은 고모에요. 이웃 동네에 살아, 어릴 때부터 들랑거리며 친하게 지냈지요. 대학 때는, 집에서 반대가 심한 남자친구 연애편지를, 대신 받아주기도 했답니다. 알록달록한 추억을 함께 가졌어요. 엊그제 터키에 다녀온 분이 식탁포를 선물로 사다 주셨는데, 수수한 면직물 가장자리에 레이스를 뜬 것이에요. 펼쳐보니 가운데에 꽃문양이 있네요. 거기에 살아온 세월을 비춰보니, 예쁘게 수놓아진 부분이 고모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고모가 지금 많이 아파요. 간염 보균자였는데 최근에 갑자기 악화되어 간암으로 진행된 것을 알게 되었지요. 모체로부터 수직감염된 것인데, 엄마가 항암 치료를 하면서, 죽을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것을 지켜본 탓에,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거예요.

  고모는 꽃을 무척 좋아해요. 저하고 닮은 점이지요. 우리 집에 꽃이 피었다고 하면 열일을 제치고 달려오곤 했었는데요. 이번에도 양귀비꽃 피었으니 꼭 오라고 했는데, 그 꽃이 다 지도록 안 오네요. 따순 밥 한 끼 먹이고 싶은데 말이지요.

  꽃집에 갔다가 한 잎에 대여섯 개씩 꽃망울을 맺은 손바닥 선인장을 만났는데, 고모가 생각나데요. 혹, 선인장 꽃에게 빠져본 적 있으신가요? 공작선인장 꽃을 보게 된다면 아마 그 우아한 모습에 반하고 말걸요. 그렇게 화사한 꽃이 딱 하루만 피우고 시들어버리는 모습이 애잔하긴 하지만요. 마치 꿈속인양, 환상적이랍니다.

  집으로 데려온 천년초는, 꽃을 피우기까지 많이 기다려야 했어요. 한 달여 지나자 꽃봉오리가 부풀고 노란 빛이 어리는 것이 느껴졌어요. 매일 매일 눈을 맞췄거든요. 첫 꽃봉오리를 연 아침엔 저절로 탄성이 나왔지요. 너 피었구나! 연노랑이 얼마나 청순하고 어여쁘던지요. 그런데 다가가 만지다가 그만 가시에 찔리고 말았어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시가 많아요.

  우리 마을에 진아 엄마는 선인장을 잘 키워요. 꽃이 피면, 많은 사람이 보게 하자고 화분을 진료소에 갖다놓곤 하지요. 그 마음이 꽃처럼 예뻐요. 올해는 기다리는 기쁨을 맛보라고, 막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가져왔어요. 꽃이 피는데 두 달여 걸리더라고요.

  진아 엄마에게도 천년초 화분을 드렸더니, 이미 키우고 있었어요. 보여주겠다고 그 집 뒤 안으로 데려갔는데, 언덕바지에 천년초가 가득 심겨져 있는 거예요. 노란 꽃이 등불처럼, 우중충한 뒤 곁을 환하게 밝히고 있더라고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잘 넘겨서, 봄마다 예쁜 꽃을 수도 없이 피운데요.

  알아보니, 천 가지의 병을 고친다는 천년초는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토종 선인장이네요. 혹한에서도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뛰어나며, 병충해에 강하고, 혈액을 맑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효능이네요. 면역력도 좋게 하고요. 고모에게 먹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아 엄마에게서 천년초를 많이 얻었답니다. 가시를 제거하는데 애먹었지만, 고모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기도하면서요. 꽃말이 무장이랍니다. 전투를 시작할 때 차리는 장비 말이에요. 마음 단단히 먹고 암과 싸워봐야지요.

  여태껏 고모가 안 오네요. 찾아가려고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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