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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연근 시작 8년만에 최고 경지 오른 김영훈씨 (하)대체작목 개발 선두주자로 '우뚝'

 

(지난호에 이어) 김영훈씨 성장은 연근 계약농가의 소득증대와도 직결된다. 연근 재배면적이 자작농과 계약재배를 포함한 20만평이 넘어가면서 어깨도 무겁지만, 오랜 노하우를 바탕한 신뢰와 실력만으로 그간 승부해왔기 때문에 얼마든 자신이 있다.

  생연근 매출액만해도 연간 18억원이 넘어가고 있으며, 각종 가공제품을 포함하면 연매출 20억은 거뜬히 넘어간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늘 마이너스다. 버는 족족 허리띠 졸라매고 계속 투자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순창군에서 1962년에 출생했다. 우체국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6살 때 진봉면으로 이사를 왔다. 김제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살았다.

  모두가 수도권으로만 몰릴 당시였지만, 열심히 하면 농업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으로 귀농을 결심하고 1991년 10월 고향 김제로 내려와 1필지(1200평) 쌀농사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의 농가가 생산한 쌀과 보리를 추곡수매나 농협 등에 내고 있었지만, 그는 소비가와 직거래로 판매하면서 제값을 받을 수 있었고, 정직한 농부의 정직한 농산물은 늘 모자라 다른 농가들의 것도 고가에 판매해줬다.

  하지만 쌀농사는 한계가 보였고, 이젠 연근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가 됐다. 연근농사를 시작할때도 코아백화점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10중 1명 정도만 연근을 알고 있었고, 안다고해도 고작 연근조림정도만 인식이 되어 있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연근에 대한 인식이 전체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연근농사를 포기했을 법 하지만 그는 역발상을 했다. "지금은 연근을 10%만 알지만, 50%가 알게되면 연근시장은 충분히 커질 수 있고, 가공까지 접목된다면 무궁무진한 시장규모를 가질 것이다"는 계산이었다. 그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연근을 재배할 경우, 쌀보다 편하게 농사를 지어도 필지당 순수입이 100만원이상 높다고 한다. 연근을 재배해서 직접 수확할 경우에는 1만평 기준으로 연봉 1억이라는게 그의 장담이다. 연근수확이 워낙 힘들지만 장기적으로보고 연근수확기를 9천만원에 구입해서 열심히하면 1년만에도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연근은 할일이 별로없다. 1년에 진딧물약 한번만 주면되고, 비료를 많이줘야하니 웃거름 줄 때 조금 힘들 뿐 그외에는 별로 할일이 없고 연작피해도 없어서 가까운 이웃에게 연근재배를 권하고 있다.

  귀농 이후 열심히 살아온 덕에 1991년 귀농 당시 1200평에 불과했던 논이 귀농 26년만에 3만 5천평으로 늘었고, 365영농조합법인 가공공장도 1200평의 대지에 건평 600평 규모로 운영하면서 고용인원만도 30명에 달한다.

  택배비만도 1년이면 2~3천만원, 그의 화물차량 탑차를 직접 운행하고 있지만 별도 차량 용차비만도 연간 3~4천만원이 들어갈 정도로 그의 유통은 활발하다.

  같은 연배 동료들은 퇴직할 나이라서 고액이 소요되는 새로운 투자는 망설일 수 있지만, 다행히 농수산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그의 아들이 승계농으로 뒤를 잇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보이고 투자가 즐겁다.

  "김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농들이 승계농을 해야 지속적으로 농업도 발전할 수 있고, 투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아들에게 "아빠가 생산·가공은 할테니 유통은 네가 책임져라"고 말했고, 아들은 아빠의 뜻에 따라 아빠의 노하우와 자신의 젊은 감각을 접목시켜 열심히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수출도 아들이 맡아 해줘서 대견하다는게 그의 흐믓한 미소다.

  제22회 농업인의날을 맞은 지난해 11월에는 농업·농촌 활성화를 통해 국가 산업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문재인대통령으로부터 산업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최종목표는 앞으로 맥도널드와 같은 세계적인 프랜차이즈점을 내는 것이며, 빠르면 올해안에 우리시에 퓨전 한식집이 아닌 신세대의 입맛에 맞는 연근관련 전문식당 1호점을 내고싶다. 대한민국의 곡창하면 호남평야이고 호남평야에서도 김제가 중심인데, 경기도 여주나 이천에 비해 변변한 쌀밥집 하나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간 힘겹게 살아왔지만 여기까지 오게된 것도 그는 늘 감사하다. 앞만보고 달려왔으나 이제는 주변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지역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그래서 지난 연말에는 김제사랑장학재단에 장학금 500만원을 선뜻 기탁하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대충하면 성공 못하지만, 집념을 갖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게 김영훈씨에게서 얻은 교훈이다.

홍성근 기자  hong@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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