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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그 꽃

  

소선녀<수필가/상전보건진료소장>

순식간에 봄이네요.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말이지요. 사실, 올해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답니다. 엄청 큰일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실패해 본 쓰라림을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까요. 가만히 한숨을 내쉬곤 했어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속으로 그러면서요.

  용기란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지,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마크트레인의 말을 되뇌어 봅니다. 태어날 때부터 특별히 용감한 유전자를 가진 것이 아니라,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것이지요. 힘겨워도 참고 버티는 것이지요. 그저 물위에 떠있는 듯 보여도, 끊임없이 발을 구르고 있는 백조처럼요.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떨칠 수 없어, 헬렌 켈러의 책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았으면서, 그녀는 임종 시에 이런 말을 남겼어요. '아!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겨울 덕유산 향적봉에 두 번 올라갔어요. 영하의 추위 속에 피운 눈꽃은, 가슴이 얼얼하도록 황홀하데요. 마치 딴 세상인 듯, 눈앞에 펼쳐진 설국은 마법 같았어요. 하지만 그 눈 속에 있는 나무는 얼마나 고단할까요? 캄캄하고 추울 텐데요. 꿈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밖에 없어요. 고통은 목표를 가진 사람의 벗입니다. 꿈은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룬다지요.

  둘째아들이 입영도 연기하고 아버지를 돕고 있는데요. 새벽부터 밤까지 힘든 기색도 없이 의연하게 잘하는 거예요. 저는 일부분만 도와도 너무 힘든데, 역시 젊으니 다르구나 생각했지요. 그래서 '아들아, 너는 어떻게 에너지를 충전하니?'하고 물었어요. '솔직히 저도 죽겠어요.' 아들이 그러네요.

  짐짓, 태연한척 하지만, 겪어야 하는 거죠. 고난과 역경은 피한다고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는 것이지요. 고난에서 뜻을 읽고 어려움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 그가 곧 빗속에서 춤을 추는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폭풍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태껏 살아오면서 비 내리는 날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혼자가 아니었더라고요.

  산다는 것은, 서로를 격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헬렌 켈러에겐 앤 설리번 선생님이 곁에 있었고요. 향적봉의 나무들도 땅속에 뿌리를 맞대고 모여 있지요. 황제 펭귄이 극한의 눈보라와 추위를, 촘촘히 붙어 서서 체온을 나누며 견디는 것처럼 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나만 잘사는 건, 꿈이 아니지요. 꽃을 피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닐까요. 마음을 내어주는 게, 그게 삶이잖아요.

  혹, 겨울팬지를 아셔요? 눈보라 속에서 꽃을 피워요. 제 옆에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꿈을 놓지 않고, 꿈에 충실한, 그런 사람이 있어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 같다는 그 사람, 돕고 싶어요. 꿈은 혼자서 꾸면 꿈으로 그치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이루어져요. 응원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인생은 함께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진: 나인권

  그렇지요, 봄꽃이 유난히 곱고 진한 이유, 춥고 황량한 겨울을 난 까닭이에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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