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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불교목조각장 '임성안 명장'을 만나다.

  금산사주차장과 맞닿은 계룡마을(금산면 금산리) 안쪽에는 무형문화재를 알리는 흔한 안내판도 없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불교목조각장 임성안 명장이 살고 있다. 작품에 집중하기 위한 은둔이겠으나, 지역주민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명인을 이웃하고 있다는 게 반가워서 지난해 봄부터 인터뷰를 하고도 기고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필자의 낮은 글로 그려내기엔 그에 대한 경외심이 컸던 모양이다.

  필자가 사는 이웃동네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42호 불교목조각장이 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4년 전이다. 지금은 폐간된 지역매거진의 커버스토리를 위해 무형문화재 방짜유기장(이종덕)을 인터뷰하면서 얼핏 임 명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악산축제에 함께하며 가까운 이웃으로

 김제시가 금산사벚꽃축제를 '모악산축제'로 새 단장하고, 우리주민들은 축제기간 일부 부스를 체험장으로 운영할 것을 계획하다가 주민공동체 일원으로 맨 먼저 임 명장이 떠올랐다. 주민들의 축제참여가 처음인 만큼 의욕이 넘치다보니 무형문화재를 욕심 낸 것이다. '주민들의 일상이 체험장으로 공유되는 축제'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임 명장을 모시기 위해  2014년 이른 봄날, 불쑥 공방으로 찾아갔다.

지평선축제에도 나가지 않고, 작품에만 몰두하고 지낸다는 소문의 임 명장에게 주민으로서 지역 축제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을 때 어찌나 흔쾌히 응해주던지, 그날 처음 만남이 인상 깊었다.

 조용한 성품의 목조각장이 본업을 사나흘씩이나 제쳐두고, 뜨거운 땡볕아래 달궈진 천막 안을 지키며 간간히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볼거리를 위해 시연하는 일과 긴 시간 다듬어 놓은 작품이 훼손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릎 쓰고 야외에서 전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금산면민의 날에도 작품 감상 공유를 위해 간이테이블에 작품을 올려놓고 면민의 날 하루 동안 전시를 해오고 있다. 무형문화재의 작품과 주민들의 취미작품이 나란히 어우러져 전시된다는 사실이 이웃들에게는 상당한 기쁨과 자긍심을 안겨준다.

  그렇게 임 명장과 도모한 모악산축제 참여는 메르스사태와 세월호참사로 인해 연이어 취소됐다가, 재작년 처음으로 축제가 열려 주민들의 부스운영이 실현됐다. 그도 축제를 위해 손수 지게차를 움직여 큰 통나무를 운반했고, 무덥게 포장된 천막 안에서 장승을 만들었다.

 그렇게 엮어진 인연으로 그의 작품 장승 '동록개의 꿈'이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에 무상으로 기증이 됐다.  

원평집강소에 세워진 '동록개의 꿈'

  그 2016년, 모악산축제장에서 무더위와 씨름하며 다듬던 장승은 작가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임 명장은 그해 여름과 가을 틈틈이 좋은 목재를 다시 다듬어서 서예가 박명근 글씨로 '동록개의 꿈'을 장승몸통에 붙이고 새겨 대형 장승 두 점을 완성했다.

  원평집강소의 큰 경사였다. 이웃주민들이 크레인과 굴착기를 동원해서 200kg이 넘는 작품을 옮기고 세웠다. 한편 행정의 보조사업비 예산하나 들이지 않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위해 힘을 모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임 명장의 작품기증은 엉뚱한데서 복병을 만났다. 장군이 머물던 유서 깊은 건물에 백정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 설치는 불경하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김제시의 강경한 조치로 장승에 새겨진 글자는 도로 깎아서 지워야했다.

 그리고 깎아 낸 그 자리에 '사람이 하늘이다'를 대신 새겼다. 원평집강소를 관리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엄연히 작품이 훼손 된 셈이니 작품을 기증한 작가에게 얼마나 민망하고 염치없던지 몸 둘 곳을 몰랐으나 그는 담담히 감당해냈다.

  신분차별 없는 평등세상을 꿈꾸었던 백정 동록개의 꿈이 12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예술작품에서 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고, 당시 작품설치에 동참했던 주민들에겐 큰 상처로 남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임 명장의 작품을 원형으로 복구하는 것에 김제시가 동의했고, 더 이상 민원이 없으며, 임 명장이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기증한 원평집강소의 터는 지난해에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이 됐다.

금산사 대적광전 불보살 조성에 동참

  충청도 대천이 고향인 임 명장은 남다른 손재주를 타고난듯하다. 돌조각을 하는 형들로부터 자연스레 조각하는 것을 익혔으나, 작은 체구로 무거운 돌을 다루기에는 힘이 부칠 것을 염려한 큰형의 권유로 목조각에 입문했다.

  임 명장은 금호·보응·일섭·우일스님에 이어 조선불교미술의 맥을 이은 석운 허길량선생 문하에서 사사 받았다. 경주 대인사와 인천 지선사 등 유명 사찰의 불상과 목 탱화 등 목 조각품들을 전통 조각기법으로 제작해서 봉안하는 작업을 석운선생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임 명장은 전통방식으로 조성한 함양 서암정사 석가모니불을 비롯해 익산 은적사 극락전 아미타 삼존불, 인천 지선사 지장 500불, 무주 백련사 사천왕상, 김포 승가대학교 석가모니불, 완주 위봉사 사천왕상, 정읍 법계사 오여래육보살 등을 조성했고, 국내 입상(서있는 불상) 중에서 크기가 8.79m로 최대 규모인 금산사 미륵전 법화림보살 보수 작업도 마쳤다.

  불상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배접을 하고 옻칠을 하고 사포질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수개월부터 1년 이상 반복되는 정성을 들여야 완성된다. 제대로 된 목재를 선택하는 안목과 어느 때 쓰일지 모를 나무를 구해서 보관하는 일들까지도 조각가의 역량이다.

  임 명장은 술을 못한다. 타고난 성품도 고요하다. 그러니 주변사람들과의 만남이 잦기 보다는 자연히 조각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었다. 본인도 그런 점을 일하기 좋은 천성이라고 여긴다.

  불자였던 어머니를 따라서 어릴 적 여러 절에 다니며 흙을 가지고 놀 때부터 부처님 얼굴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불상을 다듬으며 가장 재현하고 싶은 부분도 어린마음에 느꼈던 그 편안함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다른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낀다던 그가 부처님을 조각하는 일만큼은 만족감이 충만한 듯 보인다. 그도 부처님을 닮아가는 듯하다. 만나면 접하게 되는 필자의 느낌이다.

국내에 불교목조각장은 두 명 뿐

  대부분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의 삶은 고단하다. 무형문화재의 삶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임 명장은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좋지만, 여전히 집사람이랑 애들이 고생 많지요." 국내에 무형문화재 목조각장은 여러 명이나 불교목조각장은 두 명뿐이다. 임 명장은 전통을 이어가기 고달프고 외롭겠으나, 어찌 다행히 김제에 터를 잡았으니 시민으로서는 고맙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명장에게 아직 전수관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모태에서부터 자연스레 목조각을 학습한 그의 아들이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있으니, 사명감을 가지고 불교목조각을 전수해야하는 아비의 마음에는 든든할 것 같다.
 

 임성안 명장, 그는 욕심이 크다

  "만들고 나면 항시 뭔가 부족해요, 꼭 제대로 완성해보고 싶어요. 내가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거예요, 팔에 힘이 떨어져서 못 움직이게 되면 모를까...."

  그는 여전하다. 오직 작품완성에만 몰두하면서, 이번 모악산축제에도 주민으로서 동참하기 위해 사서하는 고생을 또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원평집강소에 있는 그의 작품 '동록개의 꿈'이 복원 되고나면 주민들과 함께 막걸리도 한잔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모악산문화공동체 구미란댁

최고원 객원기자  gumiran63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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