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육·문화
신체장애 극복 후 봉사하는 삶 실천
개인 소장전 통한 수익금 전액 기부
'작은 거인' 이희준 옹

우리나라 역사상 큰 예술인으로 활약했던 조선시대 궁중화가 석지 채용신과 소치 허련, 창암 이삼만을 비롯해 지역출신 석정 이정직, 벽천 나상목, 벽경 송계일 선생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작가의 작품을 시민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위해 공개한 것도 모자라 한 평생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수집한 고서화 판매수익금 전액을 선뜻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작은 거인'이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1944년 5월 봉남면 용신리 신복마을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이희준 옹으로 그는 3세때 부모님을 대신해 잠시 자신을 돌봐주던 누이와 장난을 치던 중 낙상사고로 인해 3급 중증장애를 입은 후 10여년을 병상에 누워 생활하다 14세가 되서야 겨우 초처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아픔을 지니고 있다.

  또래에 비해 한참 늦게 시작한 학업과 신체장애라는 핸디캡은 항상 이희준 옹의 주위를 맴돌았으며, 그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했다. 편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그는 6학년에 편입해 1년만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중·고등학교 진학을 포기,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약관의 나이가 되기도 전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한의원에 일자리를 마련한 이희준 옹은 10년 넘게 이곳에서 스스로 건강을 돌보며 한의학에 심취,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객지로 떠난 그가 다시 고향의 품을 찾은건 그의 나이 26세, 비록 장남은 아니였지만 장남에 버금가도록 가족을 향한 희생정신이 남달랐던 이희준 옹은 평소 그가 끔찍이도 아끼던 손 아랫 동생의 부탁을 듣자 마자 귀향을 결심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희준 옹 형제는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30필지까지 농사 규모를 넓혀갔다. 그러던 중 30세가 되던 해 지금의 배필을 만나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루기도 했지만 그의 가슴 한켠에는 한의사가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무렵 이희준 옹은 고서화에 관심을 갖고 아산 송하영 선생의 서예작품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총 400여점이 넘는 고서화 수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희준 옹은 처음 고서화를 구매하며 "언젠가는 내가 소장한 작품을 통해 나와 같이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농사로 발생한 수익금의 일부를 꾸준히 고서화를 구입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번번이 배우자와 자녀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고서화 수집은 그에게 있어 편치 않은 몸을 이끌며 고된 농사일에 시달린 것에 대한 달콤한 보상과도 같았으며, 훗날 장애로 고통받는 후세를 위한 밑그림이기도 했다.

  이희준 옹은 고서화 수집 외에도 각종 선행과 마을의 크고작은 일이 발생하면 솔선수범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랜기간 동안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회갑잔치 비용으로 준비한 130여만원을 불우이웃에게 선뜻 건넨 일화는 아직도 마을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외에도 등·하굣길이 불편한 학생들을 위해 수년간 봉남중학교까지 본인의 차량을 이용해 통학시켜 주는가 하면, 소싯적 한의원 근무 경험을 살려 어르신들의 건강상담과 더불어 10여명의 독거노인들에게 보약을 지어주는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라면 그는 무엇이든 아낌 없이 내어 줬다.

  이희준 옹과 관계된 사람들이 그를 가르켜 '작은 거인'이라 일컫는 이유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화사한 봄 햇살을 한 껏 머금은 채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하던 지난 5일, 후천적 장애로 일반인에 비해 고단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한 남자의 소박한 꿈이 이뤄졌다.

  이희준 옹은 자신의 소장품 400여점 중 100여점의 작품을 선별, 시민들을 위해 문화예술회관에 전시실에 내걸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시와 봉남면에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회에서는 벽천 나상목 선생의 '설악산 옥녀탕'과 벽경 송계일 선생의 '청록산수' 외 23점의 작품이 총 1500만원에 거래됐으며, 이희준 옹은 판매금 총 1500만원 중 1천만원은 시에, 500만원은 봉남면사무소에 7월 중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이희준 옹은 "신체장애가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회고 했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성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