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인권

올 여름은 힘에 겹군요.

  남새밭에 토마토 여남은 그루가 간신히 버티고 서있어요. 처음에 모종을 사다 심을 때는, 기대에 차있었지요. 지지대를 세워주고, 줄을 쳐주었는데, 훌쩍 자라는 바람에 끈을 더 매주었네요. 곁순도 집어주고요. 그랬는데 폭염과 가뭄에 시달려, 지금은 삐쩍 마른 모습이에요. 알량한 열매 몇 개, 애써 매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요.

  마당의 수련도 너무 뜨거워서 그런지, 꽃대를 올리고도 피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져 버리네요. 연못이 있는 집을 꿈꾸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요. 그래서 항아리에 수련을 키운답니다. 꽃대에게 힘을 모아주려고 묵은 잎은 자주 따줬어요. 햇볕을 덜 받는 반그늘에 옮겨보기도 하고, 찬물을 부어서 식혀주기도 했지요.

  유월부터 꽃이 피는데 팔월이 다가도록 소식이 없더니, 요즘에야 딱 한 송이 피웠답니다. 처서가 지나고서 말이에요. 가운데 꽃밥이 황금빛인 진분홍 갈래꽃이에요. 짱짱한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든지요. 나흘 동안 밤엔 오므렸다가 아침이 다시 피우더니 시들었어요. 뿌리 근처에 꽃대가 세 개나 보이는데, 과연 더 피울 수 있을까요.

  혹, 올 여름 타진 않았나요? 잠도 푹 못자고, 매사에 집중이 안돼요. 그래도 이런 와중에, 잘했다고 여겨지는 일이 있네요. 하나는 모악산의 뽕밭머리까지 올라갔다 온 일이에요. 이렇게 뜨거운데 웬 산에 가냐고 하면서 따라갔었는데요. 땀을 빼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산속을 걸을 때는 무더위를 잊어버렸고요.

  그리고 목요일마다 합창연습을 한 일이어요. 종일 더위에 시달리다가 저녁 무렵, 후줄근해진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는 일이 걱정스러웠는데요. 일단 상록관에 가면, 계곡에 발을 담근 양, 기운이 차려졌고요, 생기가 도는 사람들을 만났지 뭐예요. 그리고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도, 온몸을 던져 가르쳐주시는, 멋쟁이 지휘자님도 계시고요. 젊고 잘생긴데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셔서, 우리를 자주 웃겨주신답니다.

  하지만 합창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지휘자의 압박은 거의 숨 막힐 지경이지요. 음의 미세한 변화에도 손사래를 치시며 그냥 안 넘어가요. 한 사람이라도 음이 튀거나 피치가 떨어지면 그 파트는 모두 일어서서, 될 때까지 제자리를 맴맴 돈답니다. 지휘자님이 엄지 척할 때까지 말이지요.

  그렇게 연습해온 우리 합창단이 곧 연주회가 있는데요. 무대에 서면 코로 눈을 맞추라고, 지휘자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손에 물 한번 안 묻혀본 사람처럼, 마치 딴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몸의 자세를 반듯이 하고, 내 노래 한 번 들어봐, 이렇게 자긍심을 세우래요. 와, 가슴이 뿌듯해지데요. 자신을 이렇게 대접해 본 건 처음이에요.

  농사를 짓든, 춤을 추든, 혼신을 다해 온 맘을 기울이면 그 느낌이 전해지는 것이지요. 애써 피워낸 꽃 한 송이가 감동을 주는 것처럼 요. 여름을 견디면서 덧없이 느껴지던 삶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어지데요.

  곧, 가을이 오려나 봐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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