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훈 취재부장

'춘추필법'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오늘날까지도 해석을 두고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이 고사성어는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다는 뜻으로 여기에는 공자의 정신이 깊게 서려 있다.

  다른 뜻으로는 중국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때 주로 사용하는 '춘추필법'으로 자국 중심적 시각에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역사는 짧게 기술하거나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실제 역사를 근거로 제작돼 선풍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한 영화 '안시성'을 보면 양만춘 장군이 퇴각하는 당나라 황제 이세민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 한쪽 눈을 명중시킨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 역사서에는 고구려의 일개 장군에게 천자인 황제가 참패를 당한것이 수치스러운지 아주 간략히 적혀 있거나, 삭제되어 있다.

  바로 중국의 '춘추필법'인 것이다.

  몇일 전 벽골제의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토낭(초낭)이 물에 잠겨진 채 방치되고 있어 취재차 벽골제아리랑사업소(이하 사업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는 사업소 담당공무원으로부터 "발굴된 토낭을 다시 메운 후 그 일부를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할 계획이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사업소는 "지난 2015년 5억7600만원을 들여 진행된 벽골제 문화재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발굴된 토낭을 ▲이미 시민들에게 충분히 공개됐다고 판단 ▲유지·관리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최종적으로 문화재청 및 문화재에 정통한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메울 것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의견을 구한 시점 자체가 토낭이 물에 잠긴 후라서 좀처럼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 사업소는 토낭을 시민들에게 충분히 공개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재 토낭이 위치한 곳에는 온갖 동물들의 배설물과 잡초로 인해 접근 자체가 불가능 할 지경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시민들에게 충분히 공개했다고 사업소는 판단했을까? 토낭이 발견된 사실 조차도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인 상태에서 말이다.

  장담하건데 무작위로 김제시민 백명을 붙잡고 '토낭이 발견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십중 팔구는 '토낭이 무엇이냐?, 몰랐다'고 답변할 것으로 확신한다.

  유지·관리가 '어렵다'는 말도 납득이 안된다. 토낭 발견 당시 이를 보호한답시고 부실한 가건물 하나 지어놓고 몇몇 관계자들 초청한 뒤 행사를 치른 이후부터 유지·관리를 '안했을 것'이 그간 시의 행태를 미뤄 짐작해 안봐도 비디오다.

  자, 그럼 100번 양보해서 토낭을 그렇게 묻어버린다고 치자. 나중에 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고 설레발 치면서 다시 파헤치면 그 비용은 과연 누구 주머니에서 나올것인지 엄중히 묻고싶다.

  지난 8월(본지 525호) 기자는 사업소와 관련해 '황당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 이라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사업소의 입장은 일관되게 "발굴조사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예비신청과는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업소는 지난 2015년과 2016년 시의회에서 주요업무계획 보고 당시 '벽골제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가치와 성격을 규명하고 문화재로서의 위상 제고 및 세계문화유산등재 노력'을 벽골제 문화재 발굴조사의 목적이라 발표했다.

  이 뿐만 아니라 올해 상반기 업무계획보고에서 사업소는 아예 대놓고 문화재 발굴조사의 당위성을 '벽골제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벽골제의 가치와 성격을 규명하고 문화재로서의 위상 제고 및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에 기초자료 제공'이라고 표현했다.

  기자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인지 시민들에게 묻고 싶다. 왜 사업소는 그때 그때 입장이 바뀌는지... 기자가 취재차 방문해도 확신에 찬 눈빛으로 호도하려 드는데 만약 일반시민이 물으면 어찌 응대 할 지는 쉬이 짐작이 간다.

  사업소는 "토낭에서 얻을 수 있는 기초적인 데이터들을 이미 객관화 시켰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에 앞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잠재목록 신청과 관련해 사업소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시험삼아' 해봤다"가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참고로 이를 위해 시는 1억3500만원의 소중한 혈세를 소진했다.

  이후 문화재위원회는 사업소의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 등재 신청을 부결시키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토낭의 관리상태 부실'을 들었으며, 이는 토낭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기도 전에 관리부실로 실격이 된 셈이다.

  잠정목록에 등재신청 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을 때가 지난해였으니 훨씬 이전부터 관리가 안됐다 짐작 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사업소는 토낭이 침수될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토낭이 침수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제보를 접한 후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자 사업소 담당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마을주민들에 의하면)토낭이 발견된 곳 주변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토양으로 삽으로 흙을 퍼 올리면 그자리에 물이 고일 정도"라고 말했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시 담당자의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듣는 순간 기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것을 속으로 참아내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담당자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것을 넘어서 그동안 김제시가 알고도 그랬다는 사실이 구역질이 나올만큼 역겨웠다.

  어찌 그자리는 사람이 바뀌어도 도긴개긴이란 말인가.

  토낭은 몇몇 담당공무원의 것이 아니다. 작게는 시민을 위한 것이고 넓게는 국민을 위한 정말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쯤되면 발굴당시 전국 최초라며 모든 공적을 자신들의 것 마냥 떠들어 대더니 이제와서는 관리하기 귀찮고 버거워 메우려 용을 쓰고 있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벽골제아리랑사업소의 '춘추필법'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이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저작권자 © 김제시민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