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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오연정씨의 아름다운 도전"포기하지마! 왜 인생을 포기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런말을 자주 내뱉곤 한다. "이 나이먹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도전 조차도 해보지 않고 쉬이 포기하려는 부류를 향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소 같으면 갖은 미사어구를 동원해 길고 멋들어지게 써 내려가려 노력하고픈 마음이 기자의 욕심일 법 한데 이번 만큼은 다르다.

  이유는 단 하나. 그 누구 보다 지금 기자가 하려는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우리신문 애독자도, 기자의 개인적인 팬클럽(?)도 아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속 연로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 요량이다.

  여기 올해 졸수에 이른 한 노인이 있다. 지난 1929년 충북 공주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꼭 90세다. 90세... "과연 나의 90세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일단 기자에게는 60년에 가까운 시공간을 뛰어넘어야 하는 상상력을 동원하는 일이라 좀처럼 애를 써도 형상화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체적 나이로 인해 모든 경제활동 및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지낼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만이 부족한 상상을 대신한다.

'왕언니, 못 다 이룬 꿈에 도전하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오연정씨 공주여자사범대를 졸업한 후 지금의 금학초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게 된다. 당시 시대상황은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상 가장 우울했던 일제강점기시대로서 이를 증명하듯 오정연씨가 교사로 근무했던 학교에는 수 많은 일본인 교사들이 동료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4년여의 짧은 교사생활을 이어가던 중 우연한 기회를 통해 수채화와 유화에 관심을 갖게된 오연정씨는 이후 같은 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일본인에게 틈틈이 미술지도를 받으면서 머리속에 담아 뒀던 막연함을 형형색색의 물감을 입혀 표현하는 모습에 점차 매료됐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신여성의 생활도 잠시 조혼을 당연시 여겼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오연정씨는 현재 작고한 낭군을 만나 23세의 나이로 혼례를 올린 후 시댁인 봉남면으로 이주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본격적인 현모양처의 길을 걷게 된다.

  생활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도의원까지 지냈던 시아버지 밑에서 요촌동(구 제일극장 맞은편)에는 번듯한 주유소까지 운영하면서 교육에 몸 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슬하에 1남4녀를 남부럽지 않게끔 훌륭하게 키워냈다.

  교육자 출신에 정치인 시아버지, 낭군 역시 죽산서고등학교 이사장을 역임할 만큼 안정적인 삶이였지만 오연정씨의 가슴 한 켠에는 무엇인가 모를 허전함이 또아리를 튼 채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오씨는 학교 재직시절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찌릿찌릿한 전율이 온 몸을 감쌌다.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낭군에 대한 내조와 어머니로서의 위치가 매번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오연정씨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그림 대신 다른 곳에 취미를 붙여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선택은 요가였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지금이야 요가라는 운동이 매우 흔하고 보편화 돼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만 당시 요가라는 운동은 생소하기 그지 없었다. 더욱이 김제라는 낙후된 지방 소도시에서는 더욱 생소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운동이다.

  60세를 전후해 생소한 운동인 요가를 시작한다? 오늘날 60세와 30년 전의 60세는 객관적인 시간의 흐름상 같은 나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기자의 기억이 맞다면 30년 전에는 동네사람들 죄다 모아 환갑잔치를 거판하게 할 정도로 60세가 되면 거의 모든 생활전선에서 물러났었다.

  어찌보면 그때부터 오연정씨의 위대한 도전이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슬하의 자녀들이 자수성가하고 낭군마저 떠나 보내자 가슴속 빈공간에는 처녀시절 잠깐 배웠던 미술에 대한 향수가 거센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4년 전 더이상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미술학원을 알아봤다. 결론은 연로하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낙담하고 있던 찰나 지인의 소개로 김제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학교(사군자·한국화반)를 접하게 된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것을..."

  한달음에 문화학교에 등록한 오연정씨는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에 누구보다 열성을 보였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라고 했던가? 오씨는 나이 들어 시작한 일에 몹시 골몰하게 된다.

  초심자부터 중급자의 경우 한국화는 크게 4단계를 거쳐 완성이 된다. 처음 연필 등으로 스캐치를 한 후 밑그림을 그려 넣고 이후 먹선을 잡은면 최종적으로 그 위에 종이를 덧댄후 먹을 입혀가며 마무리를 짓는 과정을 거친다.

  평균적으로 60호(130cm×70cm) 그림 한 폭을 완성시키려면 4개월이 걸릴 정도로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오연정씨를 지도하는 강사에 따르면 "다른 수강생에 비해 열정이 대단하다"면서, "기술적인 문제 등 의문이 생기면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집념을 보인다"는 것에 오씨에 대한 평가이다.

  집념의 결과 오씨는 문화학교에 등록한지 불과 2~3년만에 온고을미술대전에서 특선을 거머쥐는가 하면 ▲벽골미술대전 특선 ▲기보동학 우수상 ▲전북도미술대전 입선·특선 등 각종 수준급 대회에 참가해 90세의 고령이 무색할 만큼 명성을 떨치고 있다.

  오연정씨가 속해 있는 문화학교 구성원 또한 대단하다. 전문 교육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국전 초대작가 1명을 비롯해 도전 초대작가 5명이 수학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는 오정연씨는 "4개월의 인내를 이겨낸 후 완성된 작품을 바라볼때면 정말 사는것이 행복하다고 느낀다"면서,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것을 후회된다"고 밝혔다.

  이어 오씨는 "나보다 젊은 친구들은 나이 생각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전하며, "포기하는 인생이 제일 불쌍해"라는 화두를 인생 후배들에게 던졌다.

  오연정씨가 보이고 있는 긍정과 도전의 에너지는 당분간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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