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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동 일본식가옥 이대로 철거되나근대유산 보존 및 발굴 필요성 대두

  신풍동 두월로 225번지에 위치한 일본식 건물이 철거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4월 본래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던 시민 A씨가 건축업자에게 3억4천여만원에 판매를 한 후 건축업자는 이곳을 허물어 재건축 할 목적으로 지난달 중장비를 동원해 담장을 허물던 중 인근 주민들의 저지로 중단된 바 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시대 우리시 쌀 수탈 역사의 중요한 현장으로 잘 보존해 발전시키면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의 보고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이번에 철거 위기에 직면한 건물도 그 중 하나이다.

  또한 이 건물 주위에는 '아리따일본가옥' 등 수 많은 일제강점기 시대 아픈 역사들이 산적해 있어 죽산면의 '하시모토 농장', '아리랑문학마을' 등과 연계했을 시 학생들을 위한 훌륭한 교육자료로서의 활용도 가능하다.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일제강점기 당시 마스도미라는 한 일본인으로부터 시작된다.
  특이한 것은 당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가 치를 떨었던 일본인의 신분으로 지난 1995년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훈장(모란장)을 받았다는 점이다.

  일찍이 마스도미는 우리시 인근에 위치한 고창군에서 '선인'으로 통할 만큼 추앙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고창군과 부안군에 학교를 짓고 당시 피지배계층인 한국인에게까지 수학의 길을 열어줬으며, 우리시 봉월리에 봉월교회를 설립해 선교활동을 펼쳤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1945년 광복 이후 이곳은 미군정 관할에 있다가 교육청 소속으로 배정 이후 김제여고 기숙사로 활용되기도 한 이 건물에는 마스도미의 양아들인 '승부태랑'이 자리를 잡고 살았다.

  아버지 마스도미의 영향을 받아 당시 주민들에게 선한 이미지를 쌓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그는 이곳을 주거공간 및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며 마스도미와 꾸준한 왕래를 통해 세를 확장했다.

  현재까지도 가옥 내부에 설치된 샹들리에는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한 껏 뽐내고 있으며, 특히 주거공간 뒷편에 건축된 사무실의 경우 오늘날까지도 비교적 옛 모습을 잘 유지되고 있어 보존가치가 더욱 뛰어나다.

  이처럼 추후 관광자원의 연계성 등이 높은 가옥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 주인 A씨가 건축업자에게 이 가옥에 대한 권리를 넘겼으므로 이 가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건축업자에게서 다시 매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화재 지정을 위해 개인이 수억원의 사비를 털어 건물 매입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므로 보존을 위해서 결국에는 시가 이 건물을 매입해야 할 상황이다.

  이 경우 행정절차상 건물매입에 관한 예산을 수립하고 시의회의 승인을 얻어 집행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당초 건물을 짓고 임대사업을 계획했던 건축업자의 입장에서는 시가 다시 매입을 하든지 허물고 건물을 짓든지 한 시가 시급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훼손시 소유자 처벌이 가능한 이 건물을 지정문화재로 등록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지정문화재 등록 요건이 좀처럼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신풍동 가옥의 경우 사무실 용도로 사용한 일부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 근래에 크고 작은 수리·보수공사가 행해져 문화재 등록 탈락 가능성이 높다.

  지정문화재 외에도 등록문화재 및 향토문화유산 지정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건축물 보존에 대한 강제성이 없으므로 사실상 손 놓고 바라봐야 할 형편이다.

  비단 신풍동 뿐만 아니라 우리시 곳곳에는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이 산적해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은 폐역이 됐지만 100여년 전 백구면에 위치한 부용역을 통해 개량된 품질의 포도가 유입되면서 지금의 백구면은 포도산업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일제강점기시대의 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 시킨 타 시·군의 경우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탈해온 물자들로 인해 비교적 번영을 누렸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일본의 잔재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시에 터를 잡았던 조상들은 1년 내내 피땀 흘려가며 가꿔온 농작물을 하루아침에 강탈당하는 범죄현장에 살면서 그들에 대한 분노가 축적돼 오늘날까지 전해져 본능적으로 일본에 대한 악감정이 더 심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일본에 대한 시민들의 불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후손들에게 생동감 있는 역사관 교육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가치 있는 근현대문화유산을 발굴 및 보존하는 등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사학에 뜻을 두고 있는 시민들의 중론이다.

신풍동 일본식 가옥 전경
건물 내부에 설치된 샹들리에가 옛 이야기를 간직한 채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남성훈 기자  nam3055@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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