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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79. 느티나무

 

사진 : 나인권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잎을 다 떨어뜨린 지금, 우주와 소통한다. 잎이 무성하게 덮여있을 때는 몰랐는데 꼭대기 부근에 새집도 있다. 제법 수북하고 안락해 보이는 저 집에 지금도 새가 살고 있을까.

  이 나무는 두 아름쯤 되는 둥치의 느티나무다. 껍질눈이 옆으로 길어져 거칠어지고 거무튀튀해진 등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마을 어른께 여쭈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지난여름 번개에 맞아 줄기가 반으로 쪼개졌는데도 용케 살아있다.

  그 나무 위로 오리 떼가 날아간다. 언제나 이른 아침 그 시간이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늘상 내다 보게 된다. 대열을 갖추고 떼를 지어 지나간다. 호수에서 숲 쪽으로 날아가는 거다. 밤엔 어디서 잘까. 물 위에서 잔다는 말도 있지만, 물에서 나와 깃털을 고슬고슬 말리고 푹 잤으면 좋겠다. 그 녀석도 합류했을까.

  그 저수지에는 늘상 혼자 노는 오리가 있다. 두 줄의 물 자락을 끌고 홀로 물살을 견딘다, 넓은 고요를 체득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쉼 없이 헤엄을 친다. 외로움에 단단해지려면 발 젓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둘러보면 대부분 떼를 이루어 모여 있거나, 적어도 두 마리 이상 짝을 이루고 있다. 심심하면 일제히 날아올라 군무를 추며 옮겨 앉기도 하고, 몇 마리가 물수제비를 뜨며 뻐기기도 하면서 재밌게 노는데, 너는 혼자구나.

  혼자 있는 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흔들리는 물비늘이 어지럽다. 어라, 한순간 녀석이 물 위로 튀어 오더니 머리부터 물속으로 쑥 들어간다. 물갈퀴를 가진 두 발이 선명하게 보인다. 온몸을 공중에 띄워 잠수하는 몸짓이라니, 뭉클하다. 한동안 고요하더니 솟구쳐오르며 동그란 물살을 만든다. 한 번 더 자맥질을 해봐, 오리야.

  저 물속에 온몸을 던질만한 무언가 있구나. 기어이 해내고 싶은 그 무엇이 지금 나에게 있는가. 그러기엔 나이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버거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까 봐 꼭짓점까지 끓지 못하지. 견딜 수 없는 용량이 꽉 차버리기 전에 8부쯤에서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말지. 헛발질이라도 한번 해보면 좋으련만.

  새파란 시절엔, 현실과 동떨어진, 저기 어디 멀리에 진리 혹은 가치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것을 잡으려고 먼 데만 바라보느라 현재의 삶을 하찮게 여겼지. 하지만 쉰 고개를 넘고 나서야 눈치챘다. 주어진 삶 여기, 지금 숨 쉬고 있는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것을. 일상의 의식주 속에 추구하는 형이상학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무성했던 시절을 건너온 후에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위쪽으로 올라왔다. 나무처럼 우둠지에서 세상을 본다. 올려다보지 않고 내려다본다. 한통속으로 보인다. 다 연결되어 있구나. 너와 나는 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무는 붙박여 있으면서도 안달하지 않고 고요하구나.

  겨울 느티나무를 자주 바라본다. 저 나무도 생각할까. 가장 무성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가만 돌이켜보니 나의 만개했던 시절을 확실히 짚지 못하겠다. 이십 대였을까, 아이들을 키울 때였나, 십 여일 서유럽을 여행했던 그때였나. 하지만 좋은 때라는 것을 그땐 몰랐었지.

  그런데 겨울 눈을 달고 있는 느티나무도, 자맥질하는 오리도 말해주는 것 같다. 진짜 삶은 지금이라고.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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