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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88.레몬트리

 

사진: 나인권

당신은 나와 더불어 생을 구성합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물론, 세상도 없습니다. 당신과의 관계로만 존재할 수 있어요. 우린 동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한자의 사람인(人)을 보면 어림잡아볼 수 있지요. 내가 당신을 바쳐주기도 하고, 당신이 나를 세워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칫 한쪽 변이 너무 길어지면 관계가 힘들어집니다. 다른 쪽을 납작 찌부러지게 하고 맙니다. 그러면 버거워지거나, 아예 허물어져 버리기도 하지요. 현대사회의 고립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쟁과 지배문화는 당신을 배제하려고 합니다. 

  레몬트리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지역 주민이 집에서 키웠다면서, 보건진료소에 갖다 놓고 싶다고 하더군요. 얼른 달려가 싣고 왔지요. 어머나, 주먹보다 더 큰 열매가 하나 달렸어요. 아직 노랗게 익지는 않았고, 초록색이에요. 보는 사람마다 '정말 이 나무에서 열렸어요?' 하면서 신기해하더군요. 그런데 나무에 비해 화분이 너무 작아요. 기른 주인도 봄에 꽃이 많이 피었었는데 열매가 하나밖에 안 남은 것은,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며, 바로 분갈이를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요. 하지만 혹여 하나뿐인 열매가 제대로 영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됐어요. 겨울이 지나면 그때 천천히 해야지 그랬다가, 하루빨리 뿌리를 쭉쭉 뻗을 수 있도록 당장 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엇갈리데요. 그러던 어느 햇빛 좋은 날, 분갈이하기로 결단을 내렸어요. 그런데 뿌리가 너무 쩔어서 나무가 화분에서 나오질 않는 거예요. 힘이 좋은 남편을 동원해서 잡아당겨 봤지만, 꼼짝도 안 했어요. 억센 가시가 달려서 휘어잡기도 쉽지 않았고요. 한참을 낑낑대다가 화분을 깨는 수밖에 없다고 남편이 그랬지만, 그냥 해보자고 했어요. 한참을 둘이서 눕혔다 세웠다, 실랑이해서 나무를 겨우 빼냈어요. 준비해 놓은 커다란 화분에 거름을 충분히 넣고 옮겨 심었지요. 그리고 살펴보니 이를 어째, 열매를 달고 있던 가지가 찢어져 있는 거예요. 하긴 이리저리 휘두르고 쑤석거렸으니 온전할 리 있겠어요. 얼마나 아깝고 속상하던지요. '화분을 깨서라도 너를 살렸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돌이킬 수 없었지요. 너무 서운해서 떨어진 열매를 가지에 묶어두었어요. 

  옮겨심은 나무는 몸살을 했지요. 이파리가 아래로 쳐지면서 말리데요. '이제 네 몫이야, 얼른 기운 차려야 해.' 물을 수북이 주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지나자 다시 일어나는 것이 보였어요. 

  그러던 중에 김제의 한 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꺼번에 몇십 명 발생했어요. 비상이 걸렸지요. 보건진료소 업무를 중단하고 선별진료소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됐어요.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돌봐야 하는 보건진료소를 폐쇄하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보호복 입고, 방호 마스크를 두 개 쓰고, 페이스 쉴드 치고 검체 채취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30분 정도 지나자 숨이 답답해지는 거예요. 그러더니 눈에서 찌익 하는 느낌이 났어요. 옆에 있는 동료에게 숨이 갑갑하다고 말했더니 '어머, 눈에 핏줄이 터졌어요. 얼른 마스크 벗어요' 하는 거예요. 천식이 있는데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흡입기를 안 해서 더 그랬나 봐요. 역학조사팀으로 다시 배정받고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느라 이리저리 뛰었어요. 그리고 일주일 만에 보건진료소로 복귀했어요.

  대기실의 레몬트리에게 다가가서 눈을 맞추는데 어머, 이것 좀 보세요. 그새 꽃망울이 맺혀 있어요. 열매를 잃자 나무는 서둘렀나 봐요. 가지마다 잎겨드랑이에 포도송이처럼 달린 꽃숭어리가 막 부풀고 있어요. 꽃송이의 골을 보니 다섯 장의 꽃잎이 벙글겠어요. 그 꽃봉에 맺힌 이슬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따서 혀끝을 대어보았어요. 그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라니요. 와아, 혼신을 다해 진액을 길어 올렸겠지요. 덩달아 긴장이 슬그머니 풀리네요. 

  새해엔 말이에요. 이 녀석처럼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고 또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당신은 나의 면역력이에요. 관심과 사랑이라는 보살핌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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