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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89. 행복나무

 

사진: 나인권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 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네'

  우리 집 화장실 벽에 붙여 놓은 글입니다. 매일 매일 바라보며 상기하려고요. 왜냐하면 행복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거든요. 아마도 삶이 분주하고 고달픈 까닭이겠지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막연히 찾아오겠지 하고 간과하는 것 같아요.

  독일의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의 행복론에 나오는 윗글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변기에 앉아서 맞은 편에 붙어있는 이 글을 볼 때, 근심에 눌려있을 때가 많더군요, 그러면, 맞아 행복해야지 하며, 얼른 자신을 추스릅니다. 후딱 감사한 조건들을 떠올리거나, 쉽게 찾아지지 않으면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뒤적거립니다. 그래, 몽골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추운 겨울에도 꽃봉을 달고 있던 목련, 그리고 엄마가 무쳐주셨던 머위나물 맛..., 그러다 보면 속이 슬그머니 풀어지곤 해하지요.

  행복이 뭘까, 고심하던 중에 서울대학교 최인철교수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프 하나가 전체 내용을 대표하더군요. 무엇을 하면 행복한가에서 의미를 X축, 재미를 Y축으로 했을 때, 우측 제일 위쪽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산책, 걷기, 운동이 있었어요. 아마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쉽지만, 육체와 정신이 함께 이듯이, 몸의 움직임이 더 우선 조건이더라고요. 운동 후에 통증이 완화되고 기분도 좋아지는 경험을 하잖아요.

  바깥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요즘, 매일매일 동네 길을 걷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육체가 허용하는 적절한 속도로 걸을 때, 우리의 정신은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급해서 생각을 앞질러버리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걷는 속도와 생각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걸요. 가장 편안한 속도로 걷다 보면 뜻밖의 생각이 떠오르고, 혼돈 상태의 생각도 말끔히 정리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생각의 가닥이 잘 잡힙니다. 행복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의미인 셈이지요.

  그리고 강의를 마치면서 '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라'는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들이 쓴 실험 논문 책을 소개해 주었어요. 실제 조사해 보니 친구에게 15%, 친구의 친구에게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게 6%의 행복을 전염시킨다는 것이죠.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네요.

  헤르만 헤세의 행복론에서도 벽에 붙여 놓은 글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데, 그것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이라고 나와요. 스스로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에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려 행복을 이룬다는 것이었어요.

  우리 집 거실에는 행복나무가 있어요. 헤테로파낙스 프라그란스가 원래 이름인데, 해피트리라고 불리지요. 두릅나무과로 어디서나 손쉽게 기르는 나무인데, 다만 중간 이상의 광도가 요구되어 창가에서 두고, 흙이 마르면 물을 주는 관심만 있으면 돼요. 행복나무라는데 별거 없지요?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가끔 무늬 없는 연두색 새순을 내는 정도인데, 그런 게 행복인가 봐요.

  그래요, 생명은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존재이니,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과 화해하고, 봄을 내다봅니다.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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