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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거리두기

 

최흥규

김제 출생·한국문인협회회원

  인간의 욕망은 누구나 다 똑같다. 생명의 출발점은 바로 욕망이고 괴로움이다. 이 것은 같이 공생하는 것이고, 따로 분리해서 삶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 자체가 모두 욕망 덩어리이다. 몸 속에 공생하는 식욕과 성욕인 마음의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 것은 생명과 삶의 현장이며 본부이다. 생명은 곧 인간의 근본이며 물질과 정신의 교집합이다.

  삶의 원천인 욕망은 계속해서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자연적인 정신활동이며 생명활동의 원동력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고 발산하며 계속적으로  생명활동 항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여, 자연속에서 내 몸과 시간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삶의 존재란 욕망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다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다. 그 괴로움 속에는 반드시 욕망이 크게 터를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갈망하는 욕망도 있고, 남이 나를 잘 봐주는 인정욕망도 있다. 그 욕망 속에는 반드시 화폐와 자본도 있지만, 욕망이 탐욕으로 변질되어 물질적 소유를 통해서 다 이루면 삶이 원대하게 행복해 질꺼라는 생각하지만 그 것은 착각이다. 그 욕망이 지나쳐서 방향을 잃어버리면 마약같이 중독되고 마구잡이식 중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패가망신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다.

  삶은 곧 길흉화복이다. 선한 마음으로 복잡한 감정들과 정신적 몸을 가벼워져야 면역력이 생성되고 정신 건강에 좋고, 삶에 지향이나 목표가 가벼워진다. 욕망이 과하면 탐욕으로 변질되고 이 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마음이 흔들거려 항상 괴롭고 자신은 종기그릇 곧 소인배가 된다.

  일상생활에서 욕망은 자연적으로 펼쳐지는 생명활동이고 원천이다. 이 것은 우리가 살고있다는 삶의 존재로서 의미이다. 삶이란 끊임없이 생성하고 창조인 것이고, 바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지금 살고 있는 증표이기도 하다.

  삶은 누구나 욕망에서 존재하고 욕망으로 살아가고, 이 것의 근본 원천은 생명력이다. 생명이 있으니 나의 몸도 존재하고 아프기도 슬프기도 괴롭다. 우리는 생명력의 근원을 잘 모른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애기다. 인간은 생명과 존재의 근원 앞에서 감각적 쾌락과 물질의 량에 올일할 뿐, 정신적 영역이 참 중요한지를 잘 모른다. 인간의 마음의 영역은 간극과 사람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경계도 없이 무한하다.

  생명활동에서 자연적인 욕망의 발산을 윤리적으로 발산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인간은 너무도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삶속에서 누군든지 자신이 시장을 지배하고 싶은 인정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욕망이 과해서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우리는 전혀 모른다. 자연에게 침 튀기며 악악거리며 살았던 지난 삶에서 무엇을 모른다에 엄청난 공포를 준다. 어디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그 길을 전혀 모른다. 이 엄청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전혀 모른다.

  살면서 무엇을 모르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우리는 독침으로 무장한 이 코로나19가 계속해서 변이로 창궐하면서 모두 다 그 무엇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고, 불쌍한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하고 자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욕망을 잘 셋팅해서 적당할 때 꺼내서 쓸 수가 없는 것이지만, 건전한 양생을 통해서 욕망의 속도를 관찰하고 삶의 현장을 적당한 성찰로 거리두기로 바뀌어야 한다. 쿨하게 표현하되 건전한 삶을 살아가면 된다. 끝도없이 변하고 헷갈리는 게 인간의 욕망이지만 자연과 소통하고 환경을 무엇보다 중요시 해야 한다.

  욕망은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가지고 살지만, 너무 맘몬주의 생각으로 채우면 채울수록 소통은 안 되고, 욕망과의 거리두기도 힘들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봉사도 하고 환경을 내 몸처럼 의식하고 나눔을 통해서 욕망의 방향을 바꾸고 이웃과 소통하며 삶의 스토리를 전체를 만들어가는 건전한 욕망과의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적인 건전한 생명활동이 필요하다.

  건전한 욕망과 거리두기를 통해서 인간의 생명과 존재의 근원앞에서 이웃을 돕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 삶이 이 만큼 만족하고 충분하다는 이타심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여, 지혜로운 자는 말하지 않고, 말 하지 않는자는 지혜롭다는 현자들의 가르침에 욕망과 적당한 거리두기 삶이 바로 소확행이고 지혜로운 삶이 될 것이다.(시인 최흥규 010-3714-4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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