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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제주의 여름
사진 - 생각하는 돌하르방

  1.생각하는 정원

어디든 의자가 있으면 앉아서, 다리를 아낍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닐 작정이거든요. 금방 버스를 놓쳐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요. 뭐, 괜찮습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읽고 싶은 책을 보거나, 생각을 정리하며 끄적여도 좋으니까요. 평소에는 차를 가지고 다니니, 버스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냈지요. 하지만 오늘은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를 즐기려고 합니다. 버스노선을 살피고 갈아타고 하는 일도 번거롭게 여겨지지 않네요. 여행을 왔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택시를 탔어요. 길도 잘 모르는 데다, 이어지는 버스가 너무 멀어서요. 일단 빨리 가보고 싶은 곳이 있거든요.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니려면, 자동차를 렌탈해서 네비를 틀고 다니라고 남편이 조언했지만, 길치에게는 그것이 더 어려워 보였어요. 제주 지도를 펴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았지요. 수목원을 좋아해서 몇 군데 동그라미를 치다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오래전에 갔던 그 기억을 찾아냈습니다. 얼른, 가보고 싶어요.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생각하는 정원입니다. 나무가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했던 곳이지요. 명품 나무들이 계속 이어져 벅찬 가슴이 쉬 가라앉질 않더군요. 그새 나무들이 많이 자랐고 새롭게 변한 곳들이 있어 기억 속의 장소와 사뭇 달라져 있지만, 알아본 녀석들도 여럿 있어요. 들어서자마자 만난 하귤나무에는 노랗고 큰 귤이 주렁주렁 달렸고, 땅에 떨어져 뒹굴기도 합니다. 지금 제주의 일반 귤나무들은 탱자만 한 푸른 귤을 쳐들고 열심히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큰 나무에 탐스럽게 달린 열매가 보기엔 좋지만, 실제 껍질이 두껍고 열매는 시어서 관상용이라고 하네요. 노란 열매를 보니, 집에 서 키우고 있는 레몬나무가 생각났어요. 땅에 뿌리를 내려 맘껏 자라지 못하고 옹색한 화분 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올봄에 꽃을 많이 피웠지만 모두 떨어져 버리고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했거든요. 두 그루 모두 말이에요.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탓이겠지요.

  '분재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고, 사람은 생각을 바꿔주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첫 번째 정원의 큰 돌에 새겨진 글귀에, 내 속을 들여다봅니다. 맞아요,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들은 끊임없이 생겨나니, 늘 잘라내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지요. 마음을 다스리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없겠지만요.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룬 이곳은, 하나하나 다듬고 가꾼 손길이 담겨,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한국 고유의 정원수와 분재 그리고 수석이 오름의 여백을 따라 이어지고, 돌담과 연못, 폭포가 어우러져 어느 곳 하나 소홀함이 없습니다. 정원사의 키는 150센티를 넘지 않는다죠. 허리를 펴지 못하는 수고를 에둘러 표현했듯이, 얼마나 고된 노동과 집념의 세월이었을까요? 전망대에서 이곳을 이룬 성범영님을 만났어요. 눈썹이 길고 숱이 많아 금방 알아보겠더라고요. 인사를 드리면서, 십여 년 만에 다시 왔는데. 더욱 아름다워지고 나무들도 많이 자랐다고 말씀드렸지요. 평생 이곳을 손질해 왔지만,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며, 결코 완성되지 못할 거라고 하시네요.

  다 돌았지만 나가기 아쉬워서, 다시 거꾸로 걸었지요. 다리가 팍팍해서, 먼나무 그늘에서 오른손을 턱에 괴고 있는 돌하르방 옆에 앉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더니 말이 없네요. 답은 각자의 마음에 있겠지요, 들고 간 책에서, 허리가 아프니 모든 것이 의자로 보인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전하는, 이정록 시인의 시에 가슴이 찡합니다. '산다는 게 별거 아녀.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의 의자에 앉으니, 자기 욕심에 골몰하여 옆을 못 보는, 어리석은 생각도 바뀝니다. 나무가 맺은 열매를 자신이 먹지 않는 것처럼,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생각에 이르러,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어요.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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