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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제주의 여름 <수국의 합창>

 

사잔- 카멜리아힐의 수국

살짝 안개가 서린 흐린 날씨입니다. 버스터미널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군요. 여럿이 함께하기도 하고, 혼자인 사람들도 핸드폰을 들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합니다. 인생에서 연결고리란 뭘까요. 젊을 적엔 학연이나 지연 또는 혈연 등을 따지면, 저런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럴까, 했었지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이란 연결고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더군요. 사람은 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급행 버스를 탔는데,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 이름에 '보건진료소'가 붙었습니다. 깜짝 반가워 가슴에 환한 불이 켜집니다. 평생 몸담아 온 직장이었으니까요. 더구나 관사에 살아서 직장이고, 집이고, 고향이었지요. 가는 내내, 건물은 어떤 모습일까, 진료소장님은 젊을까, 궁금했습니다. 정말, 큰 도로에 인접한 버스정류장 바로 뒤에 있군요. 차에서 내려서 냉큼,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마도 번거로운 외부 손님들이 귀찮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단아하고 상냥한 소장님이 계시네요.

  카멜리아힐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많지 않고, 30여 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고 안내하는군요. 마을 주민들과 그곳까지 자주 걷고 있다고요. 워낙 넓은 곳이라서 그 안을 돌아보는데 만 1시간 이상 걸릴 텐데, 걸어가는 일이 주저되었어요. 그런데 버스도 택시도 쉽게 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가다가 만나면 타지, 하고 걷기 시작했어요. 오르막길이라서 그런지 등에 땀이 차고 숨이 턱턱 막혔지만, 결국은 그곳까지 걸어가고 말았지 뭐예요.

  그래도 식물원 안으로 들어서자, 이내 수국의 서늘한 푸른색이 열기를 가라앉히고 시원하게 하더군요. 옛날에는 해열제로 쓰였다지요. 이곳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어요. 이름처럼 동백나무가 많은 곳이지요. 지난겨울에 왔을 때, 땅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을 모아 크게 하트를 만들고,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었지요. 당신 보여 주려고 오랫동안 프사에 걸어 놓았고요. 동백숲에 걸린 '잘 지내?'라는 배너를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 내려앉았어요. 이제는 멀어진 당신이 건네는 말 같아서요. '힘든 일 투성인데. 당신이 곁에 없네.' 그렇게 중얼거렸던가요.

  물과 습기를 좋아하는 탓에 수국은 여름 장마를 알리는 꽃이랍니다. 제주에서는 도깨비꽃이라고도 부르는데,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색을 달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나의 꽃말을 가진 보통의 꽃과는 달리, 상반된 두 개의 꽃말을 가졌어요. 진심과 변심이지요. 꽃 색깔이 종잡을 수 없으니 변심, 시들어버렸다가도 물만 주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 같아서 진심이라는군요.

  운동화를 신고 작은 가방을 메고, 설레는 분홍, 싱숭생숭한 보라, 완두콩 같은 연두, 씩씩한 파랑, 여러 색색의 수국 꽃길을 걸어요. 정자를 만나면 앉아서 쉬면서요. 수국은 잘 들여다보면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큰 꽃을 이루네요. 그런데 그 작은 꽃들은 꽃받침이고, 그 속에 좁쌀보다도 작은 꽃이 들어있답니다. 어쨌거나 작은 꽃들이 모여 둥글어지지요. 우리 인생도 하루하루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삶을 이루잖아요. 그런데 그 긴 산책로마다 하얀 치자꽃이 곳곳에 피어있어요. 그 고운 향기를 기억하지만 맡을 수 없어, 코를 대고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향이 참 좋지요' 그랬더니 엄청 좋다고 대답해 주네요. 향기가 없는 수국꽃을 대신해 핀, 뽀얀 치자꽃 옆에서 숨을 크게 들여 마십니다.

  어디 있나요, 당신. 성급했던 시절처럼 가버렸지만, 후각을 잃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옆으로 빠지는 비밀 정원들이 많으니 살짝 숨어 들어가, 꽃 내에 취해 짧은 입맞춤을 하지 않았을까요. 여러 다발로 엮은 소담한 꽃 동굴을 혼자 지나가 보고, 대온실 뒤쪽 언덕에도 올라가 길을 잃기도 했어요. 수국같이 둥글어진 내 평생에, 꽃잎 하나의 향기로 남아있군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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