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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푸나무들의 노래99. 은목서의 노래

 

사진: 나인권

  그저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았다.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하염없이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형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잎가지 두 장을 나란히 찍은 것인데, 왼쪽 것은 호랑가시나무 잎처럼 뾰족한 톱니가 있고, 오른쪽은 밋밋한 잎이었다. 형이 그랬다. 같은 나무에 달린 잎인데, 가시가 있는 것은 어릴 때이고, 둥글어진 것은 나이 든 것이라고. 

  저 뜰에 서 있는 은목서 사진이었다. 내내 무뚝뚝하게 서 있다가, 겨울이 가까이 오자 움찔움찔 터져 나온 꽃이, 온 나무를 덮었다. 오글오글 피어 있는 뽀얀 꽃은 가까이 가기 전부터 향내가 난다. 모두 찬바람에 웅크리느라 꽃이 없는데, 그가 있어 좋구나. 잎겨드랑이마다 모여 핀 꽃은 하얀 쌀밥을 뭉쳐서 붙여놓은 것 같다.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올라와 수도 없이 가지를 쳐서 우산 모양을 이룬 나무. 반들반들한 잎은 마주났는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린다는데, 그는 수그루니까 어림없겠지.

  어릴 때 쎄쎄쎄하고 놀았던 반달 노래에 계수나무가 등장한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는 달.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라는데 서럽고 외로운 느낌이 물씬 난다. 계수나무도 한 그루 토끼도 한 마리.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아픔이 담겨서 그렇다. 갈 곳도 모르고 되는대로 흘러가지만, 은하수 건너 샛별을 찾는다. 암흑 속에서도 달을 보며, 희망의 노래를 잃지 말라는 게지. 

  중국에서는 목서를 계수(桂樹)라 불렀고, 달에 심겨져 있다고 믿었다. 전설에 따르면 오강이 하늘의 진노를 사서 달나라의 목서를 베는 형벌을 받았는데, 베는 자리마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배고 있다나. 달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공전 주기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자전 주기가 같아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항상 같은 면만 보여준다. 언제 어디서 달을 봐도, 그림이 똑같으니, 정말 그 안에 무언가 살고 있다고 여기게 된 거다.

  운석이 달에 날아와 충돌한 부분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굳은 흔적을 보며, 설화를 지어내다니, 팍팍한 삶에 여유를 입히는 게다. 물푸레나뭇과 암수딴그루, 금목서에는 금색 꽃이 피고, 은목서에는 흰 꽃이 피는데 향기가 멀리까지 전해진다고 해서 천리향, 만리향으로도 불린다.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는 달빛을 닮은 은목서일 것이다. 

  은목서 나무 아래로 들어가 본다. 자세히 살펴보니 톱니를 잎 전체에 가진 것, 일부에 가진 것, 하나도 없이 밋밋한 것이 섞여 있다. 생명은 절대로가 없고, 지 성질대로 산다. 두툼한 네 갈래꽃이 뭉쳐 피는 것은 달에게 잘 보이라고 그런 거다. 달이 은실을 내려 일렁이면 반사해주려고 하얗게 피고, 나 여기 있다고 향을 내뿜는 거다. 수형을 둥그렇게 잡는 것도, 잎의 가시가 둥글어지는 것도 달을 닮아가느라 그러지 않았을까. 달에 있는 그녀가 베고 또 베어도 새 줄기를 내면서, 너를 두고는 죽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어쩌나, 그믐달이 뜨면, 그것도 기다리다 가다리다 새벽녘에야. 게다가 구름 많은 날은 어쩔거나. 그나마 반달 정도는 되어야, 그녀 은목서가 보일 텐데. 

  나무 아래로 그만 툭 떨어져 내린 꽃잎이 수북하다. 그녀를 위해 피웠으니 돌아가는 꽃, 어젯밤엔 그녀와 만났을까. 꽃술을 부볐겠지. 짙은 보랏빛 열매 열면, 토끼 눈이 똥그래지겠지. 첫사랑 그녀를 달나라에 두고. 그는 뜰에 서 있네.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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