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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가 낳은 '애국청년 곽태영'"우리는 5·16과 박정희기념관건립을 반대합니다"
그는 아직 열렬한 청년이다. 지칠줄 모르는 신념하나로 이순의 노구를 이끄는 청년이다.

어쩌면 66년 그 큰 세월을 '통일'과 '민족'이라는 화두 하나만을 들고 지켜온 청년혼이 그가 사는 전부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가 바로 박정희기념관반대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 anti516.jinbo.net) 곽태영(66세)상임공동대표이며 김제 진봉벌판이 낳은 김제사람중의 한명이다.

그가 최근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박정희기념관 건립의 반대와 저지운동에서 나오는 울분이기 때문이다.

"1954년 민족해방과 더불어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일제가 물러간 뒤에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을 깨끗이 숙청하여 민족정기를 확립하였더라면 독립군을 학살한 일본군 박정희와 같은 반역자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할 만큼 그의 지론은 단호하다. 아니 그만큼 그와 그가 속한 국민연대, 그리고 전국 254개 시민단체등 3만여명의 국민이 이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99년 박정희 기념관건립 취지가 발표되고 200억원의 국고를 지원하면서 김대중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국민모금 500억원 지원계획을 결의한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실망과 분노를 같이 느껴 지난 3년간 기념관건립반대 국민연대운동을 전개하였고 김대통령이 그 사업회의 명예회장직을 사임할 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간곡히 권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지난달 19일 상암동 박정희기념관 공사현장 앞에서 국민연대의 규탄집회 말미에 그가 폭탄발언을 했다.

"이렇게 집회 한번하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김대중대통령께 우리의 결의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제가 혈서를 쓰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준비한 면도칼로 오른손 무명지를 짜른 후 하얀 옥양목에 다음과 같이 혈서를 썼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 - 박정희는 우리 독립군의 학살범인데 김 대통령께서 기념관을 지어주는 것은 매국노 이완용의 후계자가 되는 겁니다. 박정희기념관을 즉시 중단하여 주십시오.

주위의 인사들과 친구들이 만류했으나 곽태영 대표의 굳은 결의는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이 탄원서는 당일로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등기발송되었고 지난 25일 청와대 민원실로부터 잘 받았다는 회신이 도착했다.

사실 국민연대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서울시에서는 지난 1월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제4 그린공원에서 몰래 기념관 착공을 실시했다.

공사현장 주변에는 어떤 용도의 건물이 지어지는 지 안내간판도 없고 조감도마저 없다. 시공업체인 삼성건설의 표지도 없어 주변 사람이나 지나가는 행인조차 박정희기념관이 지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다고 느낀다면 왜 변변한 기공식도 없이 몰래 공사를 시작했겠냐?"고 반문하면서 "항의집회와는 별도로 기념관 건립의 행정적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밝혔다.

국민연대는 국민감사청구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문옥 전 감사관, 윤한봉 상임공동대표, 등 307명의 서명을 받아 부패방지법 제40조에 의거, 기념관 건립사업에 대한 국민감사를 실시해 달라는 청구서이다.

또한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이덕우 변호사에게 의뢰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주도적으로 이 일을 맡게됨에 따라 건립반대운동에 대해 한층 힘이 더 실리게 되었다.

국민연대 곽태영 공동대표의 행보는 과거에도 뚜렷했다. 지난해 말 탑골공원 삼일문에 걸려있는 박정희 친필의 현판을 새벽에 기습적으로 떼어내 부수는가 하면, 재야시절 김대중 대통령과의 동지애적 친분으로 김대통령에게서 14대 총선의 공천제의를 받았지만 "통일이 되기전엔 국회의원할 생각이 없다"라는 말로 거절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고려대 3학년 재학시절 4.19의거에 앞장섰던 그는, 경무대측에서 발사된 총알을 피하는 사선에서의 경험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을 무척 흠모하며 사랑했다. 1949년 안두희가 김구선생을 암살했을 때, 민족이 외세에 의해 분단되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 않았다.

"제가 19살이던 해, 김구선생의 묘소에 가서 다짐을 했습니다. 10년안에 꼭 안두희를 처벌하여 민족정기를 세우겠다고..." 그는 그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꼭 10년째 되던 해인 지난 1965년 겨울에 당시 강원도 양구에서 군납업을 하던 안두희를 습격하여 죽음을 넘나드는 결투를 벌였다.

"저는 김구선생이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첩보부대인 CIC의 사주와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인 김창룡 특무부대원 안두희 소위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 뒤 이승만의 보호를 받고 승진하여 대령으로 예편했다는 사실, 그리고 안두희를 태우고 경교장에 나타났던 김병삼 대위가 박정희 정권때 체신부장관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민족배반자로 생각하고 단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카랑카랑하고 다부진 시선으로 '민족'과 '통일'만을 이야기하는 노구의 열혈청년이었다.

"제 고향 김제는 항일운동의 본거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제사람은 불의를 못참고 의기가 강해 동학혁명이나 4.19 등 민주화발전을 위해 일한 선영과 선배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김구 선생이 인천에서 탈옥을 하여 김제에서 은거할 당시, 많은 김제사람들이 도왔던 사실도 있고요.. 또한 상해임시정부에서 제2의 김구로 불리우던 화암선생도 김제사람이었고 오늘날의 이런 저를 있게해준 제 숙부 곽경렬 선생도 망해사에서 늘 민족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김제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젊은 육체는 이제 없다. 백발이 무성한 나이에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민족혼과 의기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청년이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말을 잇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가 용서하면 국민도 용서하리라는 자기모순과 정치적 야심을 버려야 합니다. 제발 김대통령이 역사의 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길 희망합니다"

오병환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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