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잊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다. 5·18은 끝난 것이 아니고 계속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5·18을 다시 생각해보자.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으로 촉발된 박정희의 유신시대의 종말의 서곡이 10월 26일 박정희의 죽음, 12월12일의 전두환의 쿠데타에 이어 1980년 5월 17일(그때도 오늘처럼 토요일이었다.) 전두환은 이 나라 이 땅의 봄을 총과 칼을 앞세워 찬탈해버렸다.
그후 23년이 지난 오늘, 그때 이뤘어야 할 민주화가 더디게, 아직도 더디게 진행해가고 있다. 아직도 일제에 의해 지배된 36년의 세월속에 일제의 은공을 입은 자들과 그 후손들이 주류로 행세하고 있고, 그들은 분단 50여년의 세월 속에 미국을 아름다운(美) 나라,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고 우리나라를 보호해주는 나라라고 믿고있다.
또한 새만금같은 천혜의 갯벌을 파괴하는 것이 지상의 선이라고 믿는 우매한 백성이 많은 터에 우리의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세종 열사
1980년 5월 17일, 당시 전북대학 농학과 2학년생이었던 이세종은 전북대 제1학생회관에서 농성을 벌이다 건물에 진주한 7공수 부대원들에 쫓겨 옥상으로 올라간 뒤, 18일 새벽 1시에 땅바닥에서 온 몸이 멍들고 피투성이인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세종열사는 59년 7월16일 당시 김제군 월촌면 연정리에서 출생하여 월촌초등, 김제중앙중, 전라고를 졸업하고 80년 5월 당시엔 평범한 전북대학 농학과 2학년생이었다.
지난 85년에 전북대 학생회관 옆에 그의 비가 세워지고 그곳은 '이세종광장'으로 이름지어졌고, 95년에는 대학의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생가근처인 김제시 연정동에 쓸쓸히 개인 묘에 안치되었다가 무려 19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역사적 평가를 받아 지난 99년 4월5일 공식적으로 5.18관련자로 인정돼 광주망월동 신묘역에 안치됐다.
계엄확대조치와 그 일환으로 진행된 각종 체포와 구금이 바로 5.18의 서막이라고 볼 때 이세종의 죽음은 5.18과 관련한 첫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조성만 열사
1988년 5월 15일, 광주민중항쟁 8주기를 맞아 민가협 등 재야민주단체 주최로 열린 '양심수 전원 석방 및 수배 해제 촉구 결의대회'의 열기가 뜨겁던 그날 오후 3시 40분경의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4층 옥상에서 한 젊은이의 피맺힌 절규가 들려왔다.
'양심수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 말이냐',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평화통일 앞당기자' 등의 목소리가 핸드마이크를 타고 약 1분간 외쳐졌고, 이어 흰색 농민복을 입은 청년은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자신의 배에 내리꽂고 5장의 유서를 뿌리며 몸을 날렸다. 그 청년은 즉시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날 저녁 7시, 그의 스물네해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 출신인 조성만이다. 조성만 열사는 초등학교(용암초등)를 마치고 전주서중과 전주해성고를 거쳐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하면서 민주화 투쟁과 한반도 통일문제에 눈을 뜨고, 87년 6월항쟁을 겪으며 직선제 정부의 출현으로 현실에 순응하며 무디어지는 국민의식을 보면서, 민족의 각성을 요구하며 산화한다.
그의 모교 해성고정문 옆에 세워진 추모비에는 그를 '부활하는 한반도의 넋'으로 추앙하고 있고 통일열사로 호칭되었다. 지금 망월동 5. 18묘역에 묻힌 그의 넋은 문민과 국민의 정부를 지나 21세기에 민주·통일조국의 밤하늘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수변공원엔 시비·조각품이 가득
열사들 기념비는 세울 생각도 못해
김제는 이렇듯 자기를 버리고 민족을 살리는 자랑스런 청년의 고향이다. 이들이 김제인이었다는 것이 21세기 김제가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청년들을 배출해야할 이유이다.
지난 5월 9일에는 수변공원을 중심으로 시비·조각공원이 준공되었다. 사업비 2억8900만원을 들여 조각작품과 시비 등 총 35점의 작품을 설치했다. 김제의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김제문화체육공원이 전국적인 명소(?)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취지다.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강조해온 곽인희시장이 막대한 돈을 들여 김제와는 별 관련 없는 시인들의 시비를 세우면서 김제의 자랑스런 열사들의 기념비하나 세울 생각을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해마다 본지의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열사들의 기념비를 세울 것을 촉구하고 제안했던 본지의 입장에서는 더욱 서운하다.
이번에 들인 사업비의 10분의 1만을 들였어도 이들 열사들의 기념비를 세워 김제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랑스런 선배의 뜻을 알리고 김제사람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리라.
또한 이것이 진짜 전국적인 명소가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김익현 desk@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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