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자발적인가?

부안군민들이 '방폐장'에 가장 심하게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자발성논란이다.

지난 6월 산자부는 7월15일까지 자발적인 유치신청이 없으면 모든 것을 주민투표로 확정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와중에 김종규 부안군수가 이해할 수 없는 기습적 유치신청을 감행했고 주민투표자체는 산자부의 암묵적 부정 속에 유야무야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했다.

내내 주민투표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산자부가 이렇듯 태도를 바꿔버린 것은 마감시간 내에 자발적 유치신청이 되었다는 것 하나 때문이리라.

하지만 부안군민들은 목놓아 외친다.
도대체 뭐가 자발적이냐고?

주민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민간건설업체와 한수원이 현지주민을 금품으로 뒤흔든 의혹도 있고 군수라는 이가 어느날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군의회까지 무시한 채 유치신청을 독단적으로 전격 발표했다는 사실은 주민들을 한없이 황당하게 했다.

주민들을 더욱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미처 대비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돌발적인 유치신청을 하기 전까지 부안군수는 '방폐장' 유치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심지어는 두 차례의 지질조사를 위한 굴착공사도까지 거절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방폐장' 안전성이나 타당성에 대한 주민공청회 같은 것은 가진 적이 없었다.

군의회도 이미 7월11일 '방폐장' 유치여부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있었다.
여기에서 군수가 10일 유치신청을 기습 발표하는 예상 밖의 행동을 했고 주민들과 군의회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되고 말았다.

그때까지 군산이 지정되는 줄 알고 도민들의 눈길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사이 불의의 일격이 부안의 심장부를 꿰뚫은 것이다.

부끄러움의 연속, 강경 또 강경

지난 7월22일 격앙된 부안군민들의 거센 항의를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몽둥이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공권력이라는 강력한 기운을 등에 업은 몽둥이는 남녀노소 어린아이 노인을 가리지 않았다.

추미애 민주당의원은 이날을 가리켜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래 가장 부끄러운 날'이라는 표현을 썼다.

부안군민들로서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정당한 항의일텐데 그것을 설득시키고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으려한다기보다는 물리적인 힘으로 입막음하려는 정부의 태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후 추미애 의원이 말한 부끄러운 날은 계속 이어졌다.
사그라질 줄 모르는 주민들의 분노에 정부는 계속된 공권력추가로 맞섰고 흥분한 부안에 진정이라는 약제는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는 판국이다.

각종언론매체에서는 현 부안의 상황을 군인만 투입되지 않았지 사실상의 '계엄사태' 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현재 부안주민들은 생업도 포기한 채 결사적으로 항전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계속된 대치에 거리는 황량해져가고 외부사람들은 위험한곳을 애써 피하고 접근을 꺼리고 있는 형편이다.

주민들은 흥분해 있다.
하지만 정부 역시 그들의 흥분을 가라 앉혀주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 국민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은 '촛불시위' 마저 이제는 공권력 앞에 철저히 차단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주민들의 불만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까지 미친지 오래다.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준 지역에 대한 대가가 겨우 이거냐며 울분을 토하는 주민들도 한둘이 아니다.

더 이상은 믿지 못하겠다

사태가 이렇게 격앙된 데에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도 크게 한몫 했다는 것이 안팎의 지적이다.

부안군 위도가 '방폐장' 후보지로 지정된 직후인 7월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주민들에 대한 현금지원이 가능하다"고 언급했으나 이를 노무현 대통령이 하루만에 뒤집으면서 불신의 씨앗은 커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정부와 주민들간에 항상 대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측 모두 대화라는 미명하에 접근을 시도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화기구에 참여한 최병모 변호사가 연내 주민투표실시를 제안했고 대책위가 내부격론 끝에 이를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듯 했다.

이때가 11월16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기와 법 제정 등의 문제를 이유로 연내 실시제안을 거부했고 분노한 주민들은 관공서에 화염병을 던지고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더더욱 격렬 시위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고건 국무총리는 19일 "정부와 주민들이 합의만 한다면 연내에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밝혔으나 다음날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이 "주민투표를 위해서는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연내불가 입장을 표명하는 등 정부방침은 말 그대로 오락가락이었다.

이는 정부가 대화를 핑계로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고 현재는 강경론이 훨씬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시위에는 무조건 강경 진압 밖에 없다는 모습뿐이어서 많은 안타까움을 던져 주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경찰들에게 밀려 굴복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결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언론과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우리의 편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외롭고 고립된 투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계화면 대책위 총무로 있는 김규태(39)씨의 한마디는 현재 부안주민들의 심정과 결연한 의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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