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정말 그 할머니 같은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되요. 뭐랄까? 허름한 옷을 입으셨어도 왠지 귀티가 나는 것 같고 왠지 모를 품위가 느껴지면서도 결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따뜻한 분이라고나 할까요"

기자에게 김지순(71) 할머니를 적극 추천해준 이는 한참동안이나 끊임없이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말이 아닌지라 다소 정리가 안 되는 경향이 없잖아있었지만 확신에 찬 표정으로 얘기를 끊지 않는 모습에서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싶구나…

"아이구…말도 말아. 그 양반은 우리 모두가 보장해. 경우 바르지, 항상 웃는 얼굴이지, 심지어는 없이 살면서도 결코 어디서 물건값도 함부로 안 깎을 정도로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양반이야."

"암만, 암만. 돈이 많다고 부자가 아니지 정말 그런 양반이 부자야"

확인작업(?)을 위해 들린 근처 경로당에서도 김지순 할머니에 대한 평가는 좋다못해 굉장히 후했다.

"기사? 무슨 기사? 나 같은 쭈그렁 늙은이를 뭐 볼 것 있다고 기사를 써? 그냥 경로당이나 왔다갔다하면서 세월만 보내고 있는데…정히 쓸 생각이면 봉사활동하고 그런 사람들을 써야지"

연신 손사래를 치면서 사양을 하시는 모습에 설득이 힘들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기자가 아닌 손자로 대해달라는 말에 잠깐 동안의 경계심 섞인 표정은 사라지고 이내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가 그려지는 김지순 할머니였다.

큰손자 김재훈(22), 작은손자 김재민(20),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두 개의 보물이다.

29살의 한창 나이에 아들이 갑자기 밖에서 명을 달리하고 며느리마저 집을 나가버린 상태에서 할머니는 홀로 두 손자를 키워냈다.

할아버지가 계셨지만 몸이 좋지 않았고 이후 중풍으로 5년 가까이를 앓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머니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 사는게 그런 것 아닌가. 내 나이 때쯤 되는 사람들 중에 고생 안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

경제적으로 넉넉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이런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은 힘든 나날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원동력을 제공했고 그런 성향은 그대로 두 손자에게 이어져 의젓하고 심성 바른 젊은이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걔들은 사춘기도 겪지 않았던 것 같어.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툭하면 삐뚤어지는게 요즘 아이들인데 얼마나 바르게 컸는지 부러울 따름이야"

옆집아주머니의 칭찬에 할머니의 얼굴 가득 웃음꽃이 핀다.

칭찬을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지만 세상에서 유일하게 얼마든지 들어도 사양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손자들을 자랑하는 말이다.
한없이 자상한 할머니지만 유독 손자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말이 있다.

'어딜 가든지 비굴하면 안 된다'

없다고 기죽지 말고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만의 인생철학이 담긴 뜻이다.

"돈이 많다고 부자인가요? 이렇게 소중한 보석이 둘이나 있는데…"

늦은 밤 슬며시 일어나서 방안을 쳐다보면 듬직하게 자라난 두 손자가 자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너무 든든하다는 김지순 할머니의 남은 소원은 단 하나다.

죽기 전에 두 손자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

이런 할머니의 말에 큰손자 재훈이가 재치 있게 답변한다.

"아…결혼 늦게 해야겠네. 우리 할머니 오래 사시게 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두 개나 가지고있는 김지순 할머니는 누구나 인정하는 요촌동 부자중 한사람이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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