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계절이 또 바뀌는 건가요? 안에만 있다보니 세월 가는 줄도 잘 모르겠네요"

신풍동에서 미용업에 종사하고 있는 왕경애(36)씨.

현재 일하고있는 미용실에서 터잡고 일한지 이제 5년 남짓이지만 한번 얼굴을 익힌 손님들은 좀처럼 그녀를 잊지 않는다.

왕씨라는 흔치않은 성 탓도 있겠지만 손님들이 그녀를 쉬이 잊지 않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드물 거야. 생긴 것은 무슨 철딱서니 없는 새댁 같은데 마음 쓰는 것 하나 만큼은 여염집 큰며느리 이상이라니까"

"암만 암만, 저렇게 어른들한테 잘하는 젊은 사람도 없지. 우리 같은 노인네들한테 잘하는 사람이 정말 착한 사람이랑게"

왕경애씨에 대한 이모저모를 듣는데는 굳이 본인한테 많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그녀에 대한 얘기를 듣고싶다는 소리에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다가와 대신해서 관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얼마 전 결혼식장에서 마신 술 때문에 미용실에 들어가자마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는 조아무개(용동·60)씨는 왕경애씨만 생각하면 지금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비틀비틀 밖으로 나가는 자신을 쫓아와 부축하고 인근에 살고있다는 아들친구라는 이를 찾아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무사히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먼발치에서 확인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예뻐 보였다고 한다.

"그런 행동이 쉽게나오는 것은 아니지.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고있는 것이 눈에 보여. 성이 왕씨가 아니고 마음씀씀이가 왕이야"

왕경애씨가 이렇듯 노인들에게 잘할 수 있는 데에는 6남1녀의 대가족사이에서 자라났다는 가정환경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친정어머니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그녀를 낳았고, 때문에 성장하는 내내 나이 차가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봄이 왔다니까 어쨌든 기분은 좋네요.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들 녹을 테고…"

사춘기 소녀 같은 낭만 섞인 몇 마디를 뱉어내는 그녀지만 봄을 반기는 이유는 기실 다른 곳에 있다.

미용실을 찾는 노인들이 혹시나 빙판 길에 미끄러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심정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비해서 어르신들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은데 수입문제는 어렵지 않으세요?"

나름대로 던진 돌발질문에 왕경애씨가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요. 이렇게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뭐가 어렵겠어요. 손님들이 없는게 힘든 거죠"

하지만 미용실을 나와 인근 상점에 들렸을 때 또 다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 노인 분들한테는 거의 무료야. 물론 장사하는 사람이라 파마 같은 것은 싸게 나마 받겠지만 일반적인 커트 같은 것은 돈 받는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아.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장담하지"

유달리 추웠던 지난겨울이었지만 왕경애씨의 미용실에는 진작부터 봄이 찾아와 있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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