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이리와 봐"

"아니, 이 녀석이, 엄마 바쁘다니…어머! 저게 뭐야?"

외지에서 우리지역을 찾았다 길을 잃고 잠시 차를 주차해놓고 있던 최아무개(35·주부)씨.
속 끓는 어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섯살배기 아들녀석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낯선 시골풍경을 감상하기 바쁘다.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아들녀석이 고래고래 자신을 부르지만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다가서는 그녀의 표정에는 짜증만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들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광경은 방금 전까지 가득차있던 신경질을 일순간에 사그라뜨리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철쭉, 목련, 백합, 꽃잔디, 국화, 수국, 장미 그리고 이팝나무까지…
대문도 담도 없이 온통 꽃과 나무로만 가득찬 어느 시골집,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들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불쑥 들어와 여기저기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허허허…우리 마을은 처음이신가 보죠? 차나 한잔 드시면서 구경하시죠"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부부가 어느 결에 다가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차 한잔을 권한다.

신덕동 신기마을에 살고있는 정채웅(59)·김혜영(46) 부부.
이들 부부가 이곳에 본격적으로 정착해 450평 규모의 그림 같은 꽃집을 가꾸게 된 것은 약 5년전쯤 부터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기는 했지만 여느 시골마을 젊은이들이 그렇듯 정채웅씨 역시 시내 또는 객지에서 주로 생활했다.

시내 쪽에서 택시운전기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고, 이웃지역인 전주, 부안에서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기도 한 그는 어느 날 부모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허겁지겁 고향인 신기마을에 들어오게 된다.

노환으로 부모님이 별세한 이후 정채웅씨는 많은 생각 끝에 농사를 지으며 고향집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지금 와 다시 생각해보면 조용한 것을 즐기는 우리부부에게 딱 맞는 생활이 아닌가싶어요. 아무튼 그때는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 없이 그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집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아내인 김혜영씨 또한 남편의 뜻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냈고 그때부터 이들 부부는 이곳에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이런 말 있잖아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정말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요. 음…그냥 이곳에서 한적한 생활을 즐기며 꽃과 파묻혀 살다 보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전보다 훨씬 웃을 일도 많아진 것 같아요. 우리가 이럴진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겸손한 말과 달리 이들 부부는 사람 좋기로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곳을 지나다 꽃을 구경하고있으면 따뜻한 차 한잔은 물론 소박한 시골밥상까지 챙겨서 대접할 정도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잖아요. 자꾸 삭막한 소식만 들려오는 현실 속에서 잠깐의 만남이나마 웃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인연이 생겨난다는 것도 참으로 귀하고 뜻 있는 것 같아요"

꽃 속에서 사는 이들 부부는 어느새 마음까지 꽃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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