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대사의 발자취가 굳이 아니더라도 화포는 넓어 그냥 좋았을 뿐 무엇인가를 안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에 기가 눌리지는 않았다.

단지 ‘나문개’라 불리우는 보라색의 평원이 날 이끌고 가는 영혼처럼 융단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게 만경 화포리는 무언(無言)으로 나를 맞았고 나는 그 무언에 맞서 참으로 긴 시선으로 끝을 어디에다 둘 수 없는 고립으로 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고립’이라 함은 내 자신이 이 거대한 자연함에 융화되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왜소함 때문이기 싶기도 하고, 더러는 툭 털지 못한 도시의 이런저런 사유들에게서 실로 오래 잡혀 있었다는 때 아닌 각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화포리의 3미터 남짓한 콘크리트 갓길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에 서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바다가 보랏빛일 수 있다는 환상이 여기에선 늘 일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판타지이다.

그 단순한 보라색 판타지 하나만으로도 저 혼자서 웅장한 바다의 나들목은 365일을 거르지 않고 저물어 갔지만, 바다이기 전의 갯가는 오랜 영겁을 두고 진흙으로 저들 생명을 키워낸 것이다.

주변의 성모암 같은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거취를 털고 일어난다 해도 그냥 세월로 새겨진 ‘만개의 이랑’이 ‘만경’이란 지명을 낳았듯 생긴 그 순수함이 애틋한 곳. 만경 화포리.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풍광이 뒤질 곳은 아니다.

그래서 황혼과 맞물린 보랏빛의 장관을 지켜보고 싶다면 나는 주저 없이 화포리를 권하고 싶은 것이다.


글-오병환, 그림-김영미

오병환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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