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배앓이에 약방으로 내달렸을 제방길엔 끊긴 추억들이 들고 일어섰다-


아흔아홉의 구비를 만나며 호수는 그렇게 혼자 커왔다고 했다.

또는 굽이쳐 비추어진 명경처럼 좀처럼 쉽게 삶에 녹여나지 않는 만경사람들을 닮고자 호수는 저 혼자 넓어지고자 한다고들 했다. 이것은 전설이다. 또한 삶이기도 했다.

그렇게 호수는 늘 그곳에 있었다. 동시대에 늘 같이 존재하면서도 호수는 평야의 역사를 먼저 알았기에 만경의 스승이었고, 징게멩게의 심장 한가운데 젖어있는 젖가슴으로 만경을 위안받게 하는 늘상 그런 아내였다.

그리고 그곳엔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연인의 섬이 떠있다. 지척의 거리를 두고 물결이 갈라놓은 두개의 섬은 풀어놓은 버드나무의 머리를 풀어헤치고 닿지 못할 애환을 거느린 채 아흔아홉 그리움을 서로는 두드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수련이 그들 섬들의 사연을 적어 보낸 연서일수도 있을 것이며, 밤맛같은 마름은 그들 사이에 채 전달되지 못한 두 섬 사이의 물밑 선물들이리라.

강아지풀이 무성한 그곳의 제방길엔 책가방 어깨에 둘러맨 채 뛰었을 학창시절을 기억이나 하는지, 아님 어머니 갑작스런 배아픔에 만경약방으로 뒤도 안돌아보고 내달렸을 모친에 대한 사랑을 제방길은 추억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능제 호숫가에는 빛바랜 기와들을 머리에 이고 저물어가는 과거의 마을만이 존재해 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욱 정겹고 익숙한 풍경임에는 분명하지만 능제는 변화를 거부하는 데에서 두 얼굴을 지녔을 법하다.

‘두둑이 만개’라는 뜻의 만경들 넓은 풍요 때문인지 예전의 영화에서 좀처럼 발을 내딛지 못하는 일면이 있는가 하면, “오래됨이 좋은 것” 이라는 명제를 붙든 채 좀처럼 놔두지 않는 전통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말이다.

어떻게 보면 호숫가에 흔하게 자리 잡았을 변변한 까페 하나 없는 건 그렇다하더라도 막걸리 한잔 죽 들이킬 선술집이 지금의 만경읍내에나 존재할 뿐, 능제가에는 그냥 무성한 풀만이 옛이야기를 숨긴 채 오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역설적으로는 인간의 손때가 묻어나지 않은 순수의 자태로써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처럼 찾은 방문객의 다리품을 덜어줄 의자하나 없는 게 서운하기도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능제를 ‘공원화’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능제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장치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 오늘만은 긍정적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래도 강아지풀 만개한 제방에 앉아 능제를 바라보니 산다는 것이 절로 편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화포에서 부는 바닷바람과 몽산들에 단단히 여무는 나락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고향인가... 되물으며 말이다.

오병환 기자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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