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르르릉…
요란한 자명종소리가 이른 새벽 방안에 울려 퍼지고 5년차 간호사 이은미(우석병원·27)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힘껏 기지개를 펴본다.

항상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도 아닌 들쭉날쭉한 근무시간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과제중 하나이기에 무거운 눈꺼풀은 좀처럼 단잠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있다.

그때 불현듯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 논으로 일을 나가는 동네아저씨의 모습이 창 밖으로 어른거린다.

'저렇게 열심히 사시는 분도 계시는데, 이러면 안되지, 정신차리자. 이은미!'

시계를 힐끔거리고, 냉수를 홀짝거리며 시간을 죽이던 동작을 멈추고 그녀는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겨우 몇 년이나 되었다고… 가끔 이렇게 나태해지려는 모습이 느껴지면 저자신도 깜짝 깜짝 놀라요. 그럴 때면 열심히 일하는 주변사람들을 돌아보려고 해요. 가속을 잃어버린 제 가슴 속의 초심 시계를 다시 뛰게 하는데 딱이죠"

간호사로서의 이은미씨를 처음대하는 환자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별로 싹싹하지도 않고 무뚝뚝한 것이 영 친절함하고는 담을 쌓아버렸구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이미지는 사라지고 대신 '어쩌면 저렇게 열심일 수 있을까? 정말 한결같군'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돌아선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짜증한번 안내는 그 모습에 그제야 이은미라는 간호사가 얼마나 친절하고 따뜻한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친절에는 두가지종류가 있는 것 같아요. 겉에서 환하게 웃어주는 외관상의 친절함과 묵묵히 환자를 지켜보며 필요한게 뭐 있는가 하는 것까지 챙겨주는 지식상의 친절함, 물론 두가지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관계로 후자에 신경을 많이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렇듯 그녀가 수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습관을 가지게되기까지는 대학 2학년 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실습을 나왔을 때였어요. 중환자실에서 한 환자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말씀을 하지 못하시는 분이셨어요. 이론으로만 배우던 것을 본격적으로 실습하던 것인지라 많이 떨리고 그랬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그분을 보살피려 노력했지요. 그리고 떠나는 날 그분이 말 대신 손짓 발짓 그리고 눈으로 저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에요.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며 콱 막혀오는 것이 뭔가 커다란 깨우침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또각 또각…
늦은 밤 병원의 복도, 모두가 잠든 시간이지만 '웃지 않는 천사' 이은미씨의 묵묵한 사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종수  oetet@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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