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빈 들일 것이다. 축제는 화려하게 부활하여 불꽃처럼 타 올랐지만 이제는 정녕 빈 들일 것이다.

그래서 들에는 온통 바람뿐일 게다. 수확은 화려하게 시작하여 비워진 들로 남는 법, 그곳을 메꾸는 정서는 이제 고독일 것이다.

한때 섬으로 존재했던 들판 위의 마을들은 이제 검은 땅으로 이어져 고립을 피하겠지만, 정작 사람들의 가슴에는 다시 계절을 기다려야 하는 고독에 목마를 것이다.

하지만 바다엔 고독이 없다. 쉴새없이 넘나드는 밀물과 썰물의 교차사이에 시간의 역사만이 퇴적 당할 뿐 정작 고독이 고립되는 경우는 드물다.

심포항 옆 거전리 앞바다는 그것을 증명한다. 아직은 바다임을 고집하지만 차마 시한부 바다임을 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아직 꺼지지 못한 생명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합과 동죽조개의 채취가 빈번해지면서 아직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항변하는 것 아닐까? 되물으며 말이다.

옆 마을 심포항이 상대적으로 번화하다지만 그 번화함은 한때의 부귀영화처럼 스스로를 소멸시켜 아름다움의 화장기를 지우고 있다고 본다면, 처음부터 화장을 하지 못한 거전리의 소박함은 아직 아름답다.

단지 스스로의 이름대로 큰 벌판에서 남기지 못한 부유(富有)의 이력에 미치지 못해 뻘은 매번 운명처럼 검게 골을 잇는 것. 그런 이유로 거전(巨田)리는 진화되지 못한 바다이기도 하다.

이렇게 소박한 포구 안에서 떠 안겨진 그 바다의 매력은 무엇일까…

만약 이글을 읽는 당신이 해질 무렵의 썰물 때 드러난 거전리의 속살을 볼 수 있다면, 그 촉촉한 갯벌 위로 그려낸 진회색 물이랑을 만져볼 수 만 있다면, 그래서 촌부의 뱃살 같은 그 완만함의 둔덕을 기억해낼 수 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리…

물과 뭍의 경계를 위해 작은 둑길이 필요했듯이, 물이 사는 바다와 사람이 사는 바다를 경계짓기 위해 거전리는 작은 수문이 필요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수심낮은 수문의 깊이에는 늘 상 되돌아가지 못한 거룻배와 그만한 사람들이 얹혀있다.

그리하여 조개껍질과 더불어 함께한 그들의 삶과 질퍽한 갯벌의 바닷내음이 어우러져 처절하도록 소박한 생(生)이 존재하는 곳, 그 이름 없음이 이름 있는 것보다 더욱 살가운 거전리인 것이다.

진봉과 광활의 사람에게 흔한 거전리일 수 있고 읍내의 사람에게는 흔하지 않은 포구이름이겠지만 나는 거전리가 사랑스럽다.
지극히 일인칭적인 맹목의 사랑이라고 꾸짖어도 좋다. 비릿한 바람이 싫다고 해도 좋다.

이미 거기엔 차마 버리지 못한 어떤 흙에 대한 향수가 바다를 향해 존재해 있었고 바다는 바다대로 흘러나온 원초의 노스탤지어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꾸미지 않았다. 기껏해야 시원한 꼬막칼국수집이 전부인 그곳에, 칼국수 국물만큼이나 시원한 바람이 있어 진정 바다같고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물과 뭍이 손을 놓지 못하는 곳.

거전리이기에 가능한 소박함이, 그래서 이유없이 이유있는 것 처럼 좋은 것이다.


오병환 기자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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