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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스토리- 김영철 동작우체국장과 송국진 광활건설 대표의 고향이야기“광활 3답구라고 불려지는 옥포리 회령마을이 저희들의 고향입니다”
흔히들 광활사람들의 역사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광활사람들의 슬픔이기도 하지만 도리어 광활사람들을 더욱 단합되게 하는 어떤 동기부여적 장치로서 그 짧은 간척지의 역사는 서울에도 이어진다. 그래서 김영철 동작우체국장과 송국진 광활건설 대표의 고향, 광활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광활한 벌판, 광활면. 대한민국과 이북을 통틀어 유일하게 임야라는 지목이 없는 지역.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라도 조그만 동산을 갖고픈 마을로 알려져 있는 곳.

하지만 땅이 질퍽이다고 사람까지 질퍽이지는 않는 곳. 오히려 널직한 갯펄만큼이나 후덕한 인심이 살아, 사람과 사람끼리 정만으로도 '답구'란 말로 통하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삶 자체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밥굶기 딱 좋다 designtimesp=3694>는 서울 인심 속에서 나름대로 성공의 인생을 걷고 있는 두 광활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지만 한 마을 사람을 공간과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그것도 비슷한 시점에 만나게 된 인연으로 그들의 고향생각과 서울살이 이야길 들어 보았다.

먼저 김영철 동작우체국장의 이야기.

1954년생인 김국장은 우리나이로 52세. 광활초교와 만경중(19회)만경고(16회)를 거쳐 성균관대를 졸업한 후 한국산업은행에 77년도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서울대경영대학원을 나와 공인회계사를 취득했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78년도에 치루어진 22회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기획원부터 이르는 공직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보화시대를 갈망하던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발족하자, 김영철 국장은 정통부 본부기획실로 발령을 받는다. 이후 95년엔 영국으로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지만 그는 여기서 부인을 교통사고로 잃어야하는, 기억하기 싫은 시절을 맞기도 한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동대문우체국장과 성북우체국장을 거쳐 지난해 5월 이곳 동작우체국장(서기관)으로 발령을 받아 250여명 우체국직원과 함께 동작구민에게 우편서비스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그가 광할 1답구에 살고 있다는 친누님에게 털어놓은 어릴적 기억은 온통 4답구 짱둑(길다란 둑길)에다 옷벗어 놓고 바지락 잡던 추억이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농약을 많이 치지 않았던 때라 들판엔 메뚜기떼, 그리고 수로엔 물고기들이 넘쳐났었지요. 그리고 우리들에겐 다른 김제사람에게는 없는 바다라는 것이 있어 생합과 망둥어 등 바닷먹거리가 있어 조금은 더 풍요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어 "언젠가 중구청 의사국장인 김철수 선배가 말했던 것처럼 겨울의 광활은 거의 시련수준이었지요, 변변한 신발하나 없던 그 당시 바람하나 막을길 없던 들판은 살을 에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김 국장의 삶은 서울 옥수동의 콘크리이트 속에 갇혀 1남1녀의 자녀와 함께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 망해사로 밖에 소풍을 갈수밖에 없었던 산 없는 광활사람의 이야길 들려주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는 돌이킬 수없는 회귀이며, 지닐 수 없는 행함이기에 전설로나마 아버지의 광활무용담을 전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일게다.


다음은 또 다른 광활사람. 송국진씨의 이야기.

송국진 향우가 경영하는 건설회사의 이름은 광활건설. 그에게 왜냐구 묻자 그는 거침없이 “내가 태어나 자라난 곳의 지명이며 말뜻 그대로 탁 트인 광활함으로 기업의 성장을 뜻한다”면서 광활면 3답구 회령마을 9반이 고향이라 한다.

광활초교(11회) 김제중(13회) 및 남성고를 거쳐 중앙대 경영학과 65학번 출신으로 서울유학의 꿈을 이룬 뒤 그는 삼양중기를 거쳐 효성중공업에 입사했다.

그런 그에게도 지난 80년, 원하지 않은 불운이 찾아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통사고. 이후 몇 년의 공백기를 거쳐 지난 90년도에 광활건설을 창업하여 그 불운을 이겨내고자 했다.

그래서 조경과 시설물을 주업으로 하는 광활건설은 종합건설은 아니지만 연 40억매출의 단단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직원 10명 남짓의 신림동 소재의 평범한 기업이지만 전북도청 신청사내의 조경공사랄지, 정보통신부 조달본부의 신청사같은 관급공사를 필두로 그 분야의 세계에선 명품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송국진 향우가 정한 “약속은 꼭 지킨다”라는 삶의 좌우명처럼 기업의 성공, 그 저변에는 ‘실적보다 내실이 먼저’라는 믿음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송 향우는 하자부분 보완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향의 기억에 대해 기자가 묻자, “아직도 양손에 쌀 한말씩을 들고 다니시는 여든다섯된 노모가 고향에 계신 관계로 고향은 여전히 내게 추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라고 말한다.
회사명이 광활건설인 것처럼 그의 뿌리는 김제의 광활에서 출발했고 아직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성장기의 기업이기에 그는 김제를 자주 찾는다.

김제가 그에게 어떤 이익을 준다는 것보다는 김제에서 위로받고 충전하기 위한 그만의 ‘기업웰빙방식’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관악구내의 김제향우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지금은 차기 향우회의 맥을 이을 부회장직의 명함도 갖고 있다.

이제 그에게 나이예순이 쉽게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후대에게 기업을 물려주어야 할 고민도 해야 하고, 그에 앞서 아들만 셋인 그에게 오는 6월11일에 있을 막내의 결혼식도 만만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겪었던 광활에서의 뜻과 같이 또 다른 웅지로 열리는 하나의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출향인 1세대에게서 출발한 발판이 그 2세대에게서 더욱 성숙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결코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김영철 동작우체국장 연락처 02-822-0004 ▲송국진 광활건설 대표 연락처 011-267-6094

오병환 기자 obh@gjtimes.co.kr

오병환 기자  obh@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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