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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소선녀의 여름5. 맨얼굴
사진- 나인권(요촌동 동서 8길에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도라지꽃 들어찬 저 산등성이를.
 
  단정한 홑꽃에 그만 반할걸요. 맨얼굴이 따로 없어요.그냥 흰색 보라색 꽃이 섞여 어울렸어요. 마음이 움직이는 건 혹한 사람 몫이지요. 

  흰 저고리에 물빛 치마를 입은 적이 있었지요. 대학을 졸업하던 해, 어머니는 저에게 개량 한복을 해 입히셨지요. 오히려 눈에 띄는 차림이 되었어요.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더군요. 우리 것에 대한 끌림, 뿌리에 대한 애착인 인 게죠. 

  큰길에서 보니, 산마루에 보랏빛이 어려 있는 거예요. 산비탈로 올라가 복숭아밭을 지나서 구릉을 넘어서니, 아 도라지밭. 기다렸다는 듯 목을 늘인, 그 아찔한 만남.

  밭둑에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도라지꽃을 바라봅니다. 세상살이, 빠듯하고 숨 가쁘게 돌아가면서도, 마음은 허허롭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지만, 인연의 두께 또한 얇아지는 듯해서요. 얼굴만 트고,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겉도는 사이로 지내지요. 왠지 알맹이가 빠져버린 관계의 허전함을 이야기하고 싶은 도라지꽃. 

  꽃봉오리는 풍선처럼 빈틈없이 붙어있어서, 마치 속엣말이 들어있는 듯해요. 점점 커지면서 색이 앉습니다. 언제 보랏빛, 흰빛이 와서 물들이는 것일까요. 꽃봉오리가 열리는 순간은, 은밀한 밤에 일어나지 않을까요. 펑, 하고 탄성을 지르지 않을까요. 속내를 서로 나누고 싶어요. 

  저 꽃이 슬며시 지기 전에, 당신 가슴도 울렁여봤으면.

김제시민의신문  webmaster@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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