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변하는 것을 눈으로 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채송화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채송화는 애써 가꾸지 않아도 씨를 많이 내서 다음해에 어김없이 돋아나는데요. 한 꽃송이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희들끼리 서로 움직여 교배를 하고 씨앗을 잉태시킵니다. 내박쳐놔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줄 안다고나 할까요. 예전에는 장독대 근처에 푸지게 피어있던 꽃이었는데, 지금은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답니다. 마당도 콘크리트 포장을 해버리니 설 땅이 없어진 것 아닐까요.

  저는 채송화에게 몹시 애착이 갑니다. 제 마음속에 새겨진 그림 때문이지요. 그것은,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다니던 시골, 첫 발령지에서 그려진 것입니다. 처녓적에요.

  그 마을의 산허리에 초가집이 있었는데, 제 또래의 아가씨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마당이 넓은 집이었는데, 여름이면 그 곳이 온통 채송화 꽃으로 뒤덮이곤 했지요. 토방만 빼고 온 마당이 채송화 꽃밭이었어요. 처음 보았을 때는 가슴이 벅차서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답니다. 그 고운 색색의 꽃물결! 그냥 보낼 수 없었지요. 아무리 아름다워도 발화의 시절은 가버리니까요.

  우리는 좋은 날을 잡아 축하연을 했습니다. 꽃이 제일 환한 한낮에 마루에 앉아서, 차 한 잔 천천히 마시며 마냥 앉아있는 것이 전부였지만요. 그 애틋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어요. 햇살에 빛나는 채송화에 겨워,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그러시데요. "비로 막 쓸어내도 저렇게 살아나야아." 역경 속에서도 악착같이 피는 꽃! 그때 그 채송화가 제 가슴속으로 들어왔나 봐요.

  지금, 그 친구는 도시로 시집가서 딸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답니다. 곧 딸을 여읜다는 소식이 올 때가 됐어요. 그런데 그녀는 그 많은 채송화를 어디에 묻었을까요. 해마다 이때쯤이면 제 속의 채송화가 꽃을 피우려고 수런대는데요.

  그 환한 채송화를 잊지 못해서 꽃밭을 만들어 보려고 애써 본적이 있습니다. 울안에 땅이 있었을 때엔 마당에 빈 병을 거꾸로 세워 동그란 경계를 만들고 채송화만 따로 심었어요. 흙 마당이 없어졌을 땐 길가 담 밑에 채송화를 옮겨 심었습니다. 시멘트 사이로 틈새가 벌어져 잡풀이 나는 곳에 흙을 돋우고 심었지요. 

  그리고 식당을 경영할 때는 식당건물을 빙 둘러서 채송화 씨를 몇 봉지나 뿌렸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채송화는 하나도 돋아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명력이 강하다는데 저와는 쉬이 인연이 맺어지질 않더군요.

  채송화 마당을 갖진 못했지만 그래도 제 속의 채송화는 여전합니다. 가물고 각박한 가슴이지만, 저를 이리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청춘! 그 발화의 순간을 붙잡아 보고 싶은 탓인지도 모릅니다. 행여, 남은 생에 그런 날이 올까요.

  우연찮게 마을의 끝머리 집에서 채송화를 만났습니다. 방긋 웃으며 저를 설레게 하네요.

  올 가을엔 다시, 저 꽃씨를 많이 받아야겠어요.

▲ 채송화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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