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는 꿈을 꾸었다. 나무들이 아름드리 우거진 숲속에서, 말과 한 몸이 되어 거침없이 달렸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승마를 하는 선배의 차를 얻어 탄 것이, 이런 꿈을 꾸게 했나보다. 그이의 차안에는 승마모자가 있었는데, 비로도 천으로 된 단아한 모양이 참 맘에 들었다. 의자 밑으로 굴러 다니는 각설탕은 말의 당근이라고 했다. 진짜 당근보다 훨씬 좋아한대나.

  말을 타본 경험은 딱 두 번 있다. 하나는 신혼여행 갔을 때 일이다. 하지만 기억은 없고 사진만 남아있다. 한복을 입고 말위에 앉은 것을 보면, 포즈만 취한 것이지 싶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제주도에 갔을 때다. 처음엔 말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었지만, 허벅지를 말의 잔등에 붙이고 안장 위에 올라앉으니 몸이 반듯해졌다. 말이 걷기 시작하자 겁이 났다. 하지만 참 근사했다. 공중부양을 한 기분이라니.

  언젠가는 몽골로 말을 타러 가리라. 땅을 박차고 바람을 가르는 것을 눈앞에 그려본다. 말과 나는 푸른 초원이 되고 마침내 푸른 바람이 될 것이다. 칭기즈 칸이 세계를 정복할 꿈을 키우던 몽골의 거친 들판을 원 없이 달릴 것이다.

  그런데 말 타는 기분을 약간이나마 느껴볼 때가 있다. 바로 자전거를 탈 때다. 에이, 그깟 자전거에 비교할까, 그러겠지만. 내리막길을 내달릴 때는 사뭇 눈까지 감고서 그 스릴을 느껴본다. 말을 탄 것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고 시선을 멀리 둔다. 고삐를 잡는 것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기술인 것처럼, 브레이크로 흉내를 내본다. 저녁마다 딸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마을 진입로엔, 이장님이 코스모스를 심었다. 도로 옆을 정리하고 잡풀들을 메면서 하루 종일 애쓰시기에, 나도 시원한 음료를 날랐다. 세 줄로 심어진 코스모스는 마침 온 비를 맞고 뿌리를 잘 내렸다. 줄지어 서있는 아이들처럼 연초록이 싱그러웠다.

  하지만 올 여름처럼 덥고 가물었을까. 땡볕에 배배꼬인 녀석들이 안쓰러웠다. 하늘에만 맡겨둘 수 없어 물을 주곤 했지만 대지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제발 비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일기예보는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다행히 늦게나마 비가 내려서 코스모스는 거의 살았다. 어른 키만큼이나 훌쩍 자라 꽃을 피웠을 땐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가을 내내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길에서 딸과 함께 신나게 자전거를 탔다.

  줄기가 가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더욱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비바람을 이겨내는 모습이다. 코스모스는 내게 말했다. 땅을 뿌리로 단단히 움켜잡고 몸은 그저 바람에 맡기라고. 흔들리면서라도 살아내라고. 바람이 불지 않는 삶은 단지 죽은 것이라고. 바람 많은 날의 코스모스는 싸이의 말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이장님도 좋아서 싱글벙글 이셨다. "징그럽게 이쁘지요. 근디 똑같이 심었는디 왜 저기만 꽃이 안 핀데요? 이상혀요. 다른 디는 다 저렇게 잘 폈고만" 모두 꽃을 실컷 피우고 나서 씨를 맺느라 법석인데, 가로등 바로 아래는 아직도 시퍼런 잎뿐이다. 자연을 거스른 벌일까, 볼썽사납구나.

  벌써 가을은 가고 있지만, 저 코스모스 길을 따라 말을 타고 달리는 꿈을 놓지 못한다.
  가로등 아래의 코스모스마냥 아직 실컷 살지 못했기에.

▲ 코스모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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