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고무신 선거의 추억

나현균
김제협동조합아카데미회장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막걸리라도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시절, 거저 주는 막걸리 몇 사발과 고무신 한 켤레가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어, 나같은 놈의 한 표가 뭐 그리 대단하랴싶어 막걸리라도 한 잔 얻어 먹은 사람을 찍어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수롭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 농사짓는 사람들의 표가 모여 결국 우리 앞엔 3선개헌으로 다가왔고 곧 이어 유신독재로 다가왔다. 농촌에서는 야반도주가 성행하였지만 그건 그저 게으르고 운나쁜 사람들의 운명쯤으로 치부하였다.

정부에 의해서 정책적으로 수행되어진 의도적인 저곡가정책이 농민들을 도시로 내몰아 저임금노동자들을 양산해 내려는 의도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우린 보릿고개를 이기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정부정책을 찬양하는데 동참하고 있었다.

그 결과 기업주들은 떼돈을 벌어 재벌들공화국의 지배자들이 되었고 농촌에서 새벽부터 어스름이 내릴때까지 평생을 일해온 어르신들은 이제 기초노령연금 20만원에 목을 메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쌀밥이라면 아무 반찬없이 그저 간장만 찍어 먹어도 그렇게 맛있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겪었던 보릿고개는 게으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수탈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농민의 춘궁기는 모두 타락한 왕조와 탐관오리들의 수탈때문이었고, 근·현세에 있어서는 일제의 수탈때문이었고, 독립후엔 일제부역자들을 등에 업은 정치권력집단들의 수탈과 전쟁의 참화가 더하여져 만들어진 민족사의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정도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그러한 참화를 딛고 일어선 우리 어르신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누가 정치를 잘해서 보릿고개가 없어졌다는 쿠데타세력들의 말장난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된다.

농경문화가 시작된 유사이래 사람이 놀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데, 굶는 경우는 딱 두가지 뿐이었다. 첫째는 가뭄, 홍수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흉작이요. 두 번째는 지배세력의 과도한 수탈 때문이다.

보릿고개가 없어진 것은 어르신들이 그만큼 열심히 손이 부르트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온 결과이지 어떤 정치집단의 노고때문은 결코 아니다.

어떤 피상적인 분석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공업화가 진행되며 자연히 농촌이 피폐해졌다고... 그러나 정말 생각있는 분석가라면 문명이 진보하고 공업이 발전한 것이 농업의 피폐로 귀결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은 먹거리이기 때문에 부등가교환만 아니라면 농민들은 사회의 진보화 함께 제일 먼저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껏 농촌의 피폐로 이끌어져 온 것은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공산품은 비싸게 농산물을 싸게 책정한 군사정권의 저곡가정책 때문이다. 평생 수고만 해오시며 대한민국을 이토록 부흥시켜 놓은 어르신 세대들도 세월앞에선 장사없듯이 이제 어쩔 수 없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오는 3월 11일에는 전국동시 조합장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이를 앞두고 옛날의 막걸리선거가 생각나는 것은 당장의 목마름 한번 해결하자고 얻어 마신 막걸리가 평생 우리 어르신들을 옭아 맨 동아줄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어서이다.

이제는 더 이상 속지 마셨으면... 어려움속에서 아직도 농촌에 남아 농토를 지키고자 하는 농사꾼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던져 주셨으면...

일할만한 사람, 양심바른 사람을 선택해서 더 이상 농민이 기만당하지 않고 사는, 더 이상 어르신들이 무시당하지 않고 사는 세상을 만들어 봐야지 않겠느냐고 외치고 싶다.

OECD 가입국중 노인빈곤률 1위 자살률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이 암울한 시대에 농협조합장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역대 선거중 조합장선거가 가장 혼탁한 돈선거가 되어 왔다는 지적도 있고, 지지하는 후보가 있어도 마지막까지 내색을 안해야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우스게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수천년을 이어온 농사의 고장 김제에서만은 막걸리 고무신 선거의 씁쓸한 추억이 이번 3.11 농협조합장선거에선 다시 떠올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디지털 김제시대 gimje@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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