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근 편집국장 hong@gjtimes.co.kr

  기자는 지난호 본지 데스크칼럼을 통해 '무능 무소신 행정으로 잘해도 10억 손해'라는 제목으로 우리시의 서남권화장장 참여문제에 대한 경과와 최근의 사태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호에는 앞의 칼럼 제목에서 4자만 바꿔 칼럼을 다시 쓰려한다. 불과 20여일이 흘렀지만 제목은 '잘해도 10억 손해'에서 '빌고도 22억 손해'로 바뀌었다.

  앞의 칼럼을 요약하면, 화장장 문제로 우리시와 정읍시가 마찰을 빚자 2013년 12월 전라북도갈등조정자문위원회가 우리시가 화장장에 참여하는 대신 건립비용은 7억원만 부담하면 되고, 고창과 부안이 지원했던 15억도 금산면·봉남면 주민의 민원해결을 위해 면제하는 중재안을 내놓았었다. 우리시에 상당히 유리한 안이었다.

  하지만 이건식시장은 이듬해 6월에 있을 지방선거 때문인지, 발표당일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시장은 당선 이후 2개월만에 화장장 참여에 대한 시민여론조사를 실시했고, 찬성율이 80%를 넘었음에도 발표를 미루고 담당부서까지도 허송세월만 보냈다. 정읍시에서는 우리시에 3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 광역화장장 참여의사를 종용했지만, 우리시는 답변을 미룬 채 손을 놓고 있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정읍시에 대한 우리시의 입장은 분명 '갑'이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도 아무일도 하지않고 있었던 김제시는 지난해 4월에야 정읍시에 공문을 보내 참여의사를 통보한다. 전라북도갈등조정자문위의 중재안이 나온지 16개월이 지난 시점이자, 지방선거가 끝나고도 10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이렇게 김제시는 무능과 무소신 행정으로 골든타임을 허비해 버렸다. 

  이때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도갈등조정자문위의 권고안은 무력화되고, 정읍시는 우리시가 참여하려면 인구비례에 따른 시설비용분담금 17억5천만원과 주민지원기금 15억원을 합해 32억 5천만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갑'과 '을'이 바뀌는 순간이다.

  김제시는 당황했고 "시설비용분담금 17억5천만원은 낼테니, 금산·봉남면의 민원을 해결해야 하므로 갈등조정위의 권고대로 주민지원기금 15억원은 면제해 달라"고 읍소했다. 여기까지가 지난호 칼럼까지의 시점이다.

  그러나 이미 갑이되어버린 정읍시의 입장은 단호했고, 김제시는 지난 30일 정읍시에 다시 공문을 보내 시설비용분담금 17억5천만원중 5천만원을 깎고, 주민지원기금 15억원에서도 3억을 깎아 29억을 내겠다고 제안한다. 공문 전달 6일 후 정읍시는 "대승적 차원의 화해와 4개 시군의 상생협력을 위해 김제시의 제안을 수용한다"고 선심을 쓰면서, 한가지 단서를 붙인다.

  기자가 지난 2014년 9월 데스크칼럼에서 우려했듯, 이미 김제시의회 의장단(2015. 7.29)과 이건식시장(2015. 8.11)이 정읍시에 찾아가 사과를 표명했음에도,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감곡면민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사과를 선행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금산면출신 김복남시의원을 지목해 '1월 8일 감곡면이장단회의에 참석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요구를 덧붙였다.

  이 요구에 대해 시 관계부서는 지난 7일 오후 2시 시청 상황실에서 강병진·정호영 도의원과 김복남·김윤진 시의원, 이승복부시장과 관계부서 공무원이 긴급간담회를 갖고, 대승적차원에서 정읍시의 요구를 수용해 감곡면에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간담회 결과에 정성주시의장이 발끈하고 나섰다. "집행부가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 벌어진 일을 왜 죄없는 시의원이 감곡면까지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정의장의 단호한 태도에 가뜩이나 불편했던 김복남·김윤진 시의원은 감곡행을 포기했고, 정읍시가 요구하는 노른자가 빠진채 정호영 도의원과 이승복 부시장, 손삼국 행정지원국장, 양해완 여성가족과장이 지난 8일 오전 11시 감곡면이장단회의에 참석해 그간의 과정을 정중히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참담했다. "김복남 시의원이 빠진 사과는 수용할 수 없으므로 오늘 사과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냉담한 답변이 감곡면이장단의 공통의견이었다. 거듭 사과가 이어졌음에도 감곡면이장단은 "바쁜시간에 찾아와 준 것은 고맙지만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기자는 조금은 과장된 상상이지만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삼전도의 굴욕'이 떠올랐다. 인조는 삼전도 나루에서 세번 무릎을 꿇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를 했다.

  우리시와 상의 한마디없이 우리시 접경지역에 버젖이 광역화장장을 건설한 정읍시이다. '시설비용분담금 7억원만 내고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라'는 도갈등조정자문위의 권고안이 무력화되고, 권고안보다 22억을 더한 29억을 바친다고해도 '삼궤구고두'를 요구하는 모습에 눈 한번 크게 뜨지 못하고 당하는 우리시 도의원과 고위공무원들이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사태를 여기까지 참담하게 몰고온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옳다. 공무원과 정치지도자들의 무능과 무소신으로 막대한 시민들의 혈세가 누수되어도 공무원은 그 자리만 떠나면 그만이고, 정치인은 시간만 잘 넘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주인인 시민들은 관심이 없거나 안다고해도 금새 잊어버린다. 누구를 탓하랴...

홍성근 기자  hong@g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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